해가 바뀐다고 해서 세월 그 자체에 변동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어제와 오늘이 각각 하루라는 시간의 단위로서는 다르지 않듯이.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눈에 뜨이게 변하는 것은 주로 생명을 가진 온갖 유기체들, 그 중에서도 특히 인간과 인간들이 모여 만드는 각종 사회와 환경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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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 시인·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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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 시인·예술원 회원
세월과 더불어 변하는 인간들 사이에서도 그 변화의 양상이나 의미는 각양각색이다. 따라서 같은 새해라 하더라도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과 노쇠기에 접어든 노인들 사이에는 그것이 지니는 뜻과 느낌이 사뭇 다를 수가 있다. 그러면서도 새해에는 또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공통된 느낌을 주는 때이기도 하다.
그 공통된 느낌이란 살아있음의 흐뭇함과 앞날에 거는 소망의 그것이다.“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우리네 새해 인사에는 그 두 가지 느낌이 함께 담겨져 있다. 이 인사말은 표면상 앞날에 대한 소망만을 언급하고 있지만 그것은 살아있음의 행복감을 전제로 한 언사이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우리가 세계의 여러 민족 가운데서도 재능과 열정과 정력에 있어 출중한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고 흔히 장점과 단점은 같은 것의 양면일 때가 많다.
우리 사회의 온갖 비리와 갈등과 과열은 대부분 그와 같은 우리의 장점 내지 강점의 역기능이 낳은 사회악들이다. 우리의 삶의 합리화, 효율화 및 선진화에 걸림돌이 되는 사회악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이성과 기율을 회복해야만 한다. 그러면 그것들은 어떻게 회복되는 것일까.
알기 쉽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 방도를 들라면 필자는 먼저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서 조급함을 피하는 것과 줄서기의 차례와 교통규칙을 지키는 것과 같은 공공정신의 발휘와 실천을 들고 싶다. 이것들은 두 가지 다른 일로 생각되지만 실지로는 같은 일이다. 왜냐하면 줄서기나 교통규칙을 제대로 준수하지 못하는 것은 주로 조급함에 그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필자가 들고 싶은 것은 자기만을 생각하지 말고 남을 배려하는 이른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을 습성화하는 일이다.‘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라든가.‘남이 내게 해줬으면 하는 바를 남에게 해줘라.’라는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다같이 남을 위한 배려를 가장 알기 쉽게 풀어서 말한 것에 불과하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남이야 어찌 됐든 나만 편하면 된다는 식의 행태는 조급함을 넘어 조야하고 조잡한 관행이 아닐 수 없다.
국민총생산이 2만달러를 바라보고 수출액이 3000억달러를 넘었다고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줄서기의 차례나 교통규칙을 제대로 못 지키고 남을 배려하는 관행이 정착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아무리 경제발전을 이룩한다 해도 여전히 무식하고 촌티나는 졸부밖에 되지 못한다. 그렇게 되기보다는 설사 좀 가난하더라도 맑고 점잖고 교양있게 사는 것이 훨씬 사람답게 사는 길일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민이 되는 길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가까운 데에 있다. 앞에서 든 것과 같은 사소한 마음가짐이 몸에 배어 우리가 명실공히 선진국민이 되고 우리 민족 고유의 강점들이 역기능 없이 발휘될 때 펼쳐질 우리의 미래상은 가슴 벅찬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김종길 시인·예술원 회원
2007-01-0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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