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외교부(당시는 외무부) 고위당국자가 사석에서 아프리카를 “한심한 동네”라고 비난했다.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 외무장관을 초청했는데 왕복 비행기표를 미리 요구했다. 표를 보내줬더니 돈으로 바꿔간 뒤 “한국에 못 오겠다.”고 배짱을 부렸다는 것이었다. 다시 표를 보내고 간신히 설득해 한국에 데려올 수 있었다. 서울에서도 술자리를 포함해 극진한 대접이 이어졌다.“양국 관계가 특별한 게 없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했다.
1970년대 비동맹외교 무대에서 북한에 쓰라린 치욕을 맛본 한국은 절치부심했다. 북한은 비동맹과 유엔에서 표가 많은 아프리카에서 군사고문단 파견, 경제·무기 지원, 운동장 건설 등으로 입지를 확고히 굳히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에 이은 전두환 정권은 ‘아프리카 교두보’ 확보에 심혈을 기울였다. 아프리카 국가와 정상·각료 차원의 초청·방문 외교가 활발히 추진되었고, 국력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공관들이 잇따라 개설되었다.
그러나 옛 소련 붕괴로 냉전이 소멸한 뒤 한국에 아프리카는 다시 잊혀진 대륙으로 전락했다. 예산절감을 내세워 재외공관 감축을 추진할 때 그곳 지역이 우선 대상이 되었다. 외교부의 아프리카국은 중동·아프리카국으로 통폐합되었다. 돌이켜보면 안타까운 일이다.1980년대 중반까지 정치적 목적으로 이뤄졌던 ‘과다 투자’를 바로 통상·자원쪽으로 확대·발전시키는 혜안이 아쉬웠다.
일본과 중국은 달랐다. 미국·유럽과 소련간 체제 경쟁이 사실상 끝나자 아프리카 진출을 본격화했다. 일본은 14년 전 아프리카개발회의를 창설해 집중 원조에 돌입했다. 중국도 10년 이상 아프리카에 공을 들여왔고, 지난주에는 베이징으로 아프리카 48개국 정상을 불러모으는 이벤트를 성사시켰다.
한국이 엊그제 서울에서 제1회 한·아프리카 포럼을 열었다. 청와대는 이날을 ‘아프리카의 날’이라고 치켜세웠다. 참석한 아프리카 정상은 다섯명. 중국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시작이 중요하다. 아프리카의 자원과 성장 잠재력은 아직 무궁무진하다. 끈기를 갖고 접근하면 이전에 한국 외교가 어렵게 뿌린 씨앗이 자라고 있는 현장을 찾을 수도 있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1970년대 비동맹외교 무대에서 북한에 쓰라린 치욕을 맛본 한국은 절치부심했다. 북한은 비동맹과 유엔에서 표가 많은 아프리카에서 군사고문단 파견, 경제·무기 지원, 운동장 건설 등으로 입지를 확고히 굳히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에 이은 전두환 정권은 ‘아프리카 교두보’ 확보에 심혈을 기울였다. 아프리카 국가와 정상·각료 차원의 초청·방문 외교가 활발히 추진되었고, 국력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공관들이 잇따라 개설되었다.
그러나 옛 소련 붕괴로 냉전이 소멸한 뒤 한국에 아프리카는 다시 잊혀진 대륙으로 전락했다. 예산절감을 내세워 재외공관 감축을 추진할 때 그곳 지역이 우선 대상이 되었다. 외교부의 아프리카국은 중동·아프리카국으로 통폐합되었다. 돌이켜보면 안타까운 일이다.1980년대 중반까지 정치적 목적으로 이뤄졌던 ‘과다 투자’를 바로 통상·자원쪽으로 확대·발전시키는 혜안이 아쉬웠다.
일본과 중국은 달랐다. 미국·유럽과 소련간 체제 경쟁이 사실상 끝나자 아프리카 진출을 본격화했다. 일본은 14년 전 아프리카개발회의를 창설해 집중 원조에 돌입했다. 중국도 10년 이상 아프리카에 공을 들여왔고, 지난주에는 베이징으로 아프리카 48개국 정상을 불러모으는 이벤트를 성사시켰다.
한국이 엊그제 서울에서 제1회 한·아프리카 포럼을 열었다. 청와대는 이날을 ‘아프리카의 날’이라고 치켜세웠다. 참석한 아프리카 정상은 다섯명. 중국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시작이 중요하다. 아프리카의 자원과 성장 잠재력은 아직 무궁무진하다. 끈기를 갖고 접근하면 이전에 한국 외교가 어렵게 뿌린 씨앗이 자라고 있는 현장을 찾을 수도 있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2006-11-1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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