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로 치면 김근태는 참 재미 없는 선수다. 노무현의 저돌적인 파괴력도, 정동영의 화려한 테크닉도 없다. 그리고 느리다. 왼손을 뻗을까 오른손을 날릴까 생각하다 한 대 더 맞는다. 매에 강해 잘 버티기는 한다. 하지만 이래서야 경기를 이길 수 없다. 그래서 대권의 길목에서 노무현에게 졌고, 당권을 놓고 정동영에게 졌다. 상위 랭킹을 유지해 왔지만 챔피언이 되어본 적은 없다. 흥행도 물론 안 된다. 그래서 지지율이 늘 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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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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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호 논설위원
‘마지막 재야’ 김근태가 정치판에 발을 디딘 지도 11년반이 됐다. 사실 그는 정계에 들어설 때부터 ‘몸값’이 비싼 인물이었다. 재야단체 ‘통일시대국민회의’를 이끌고 1995년 2월 민주당에 합류하면서 그는 부총재로 정치를 시작했다. 민자·민주 양당의 세 불리기 경쟁에 그의 27년 재야활동이 빛을 발한 결과다. 그 뒤로도 최고위원, 상임고문 등을 맡으며 지도부의 반열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는 정계입문 후 늘 비주류였다. 왜일까. 그는 왜 권력의 기피인물일까.
이유는 여럿이다.DJ(김대중)에게 ‘국민참여경선’을 요구한 죄(?), 노무현 후보에게 후보 단일화를 주장한 죄 등등.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느린 발’도 한몫했다.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창당과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이라는 격변기 때마다 그의 선택은 꼭 한발씩 늦었다.1995년 민주당 분당 때 그는 ‘구당파’로 남았다가 이기택 총재가 버티자 뒤늦게 DJ신당을 따랐다.2003년에도 그는 분당을 결사반대했으나 결국은 사흘간 단식한 뒤 짐을 쌌다. 그의 행보는 두 차례 모두 신당파와 구당파간 힘의 균형을 깨는 역할을 했다. 그만큼 걸음이 무거웠다. 다만 그런 느린 발 때문에 그는 결코 새 정치질서의 주역은 되지 못했다.
고민이 많고, 그래서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이 ‘여의도의 햄릿’이 최근 예사롭지 않은 행보를 보인다. 김병준-문재인 불가론으로 한차례 노무현 대통령과 인사갈등을 벌이더니 이젠 정책갈등으로 전선을 넓히고 있다. 기업규제를 대폭 풀어주자는 ‘경제뉴딜’의 깃발을 흔들며 청와대를 한껏 압박한다. 이에 청와대는 김근태 의장이 얼마전 재계에 약속한 8·15 경제인 특사를 무산시키는 것으로 맞대응했다. 장군과 멍군이 부닥치며 갈등수위가 투쟁단계로 올라가고 있다. 참모회의에서 눈물을 보이며 울분을 토로하는 측근들도 있다니 양측의 격앙된 분위기가 짐작된다.
노-김 갈등의 분수령은 다음달 시작될 정기국회가 될 것이다. 경제뉴딜 관련 법안들을 놓고 양측의 정면충돌이 불가피하다.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정기국회 후 당·청 결별, 여당 해체라는 시나리오까지 내놓았다. 후배의 말을 빌려 “빨갱이가 수구꼴통이 되더라도 좋다.”고 한 것을 보면 김 의장도 승부수를 던진 듯하다. 기왕 불가피한 정계개편이라면 과거처럼 뒷줄에 서기보다 맨 앞에 나서기로 작심한 모습이다.
앞서 두 차례의 여권 개편은 분당-창당의 ‘뺄셈방식’으로 전개됐다. 그러나 당장 이런 전개는 없을 듯하다. 노 대통령이 “탈당은 없다.”고 한데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중요하다.”는 것이 김 의장의 지론인 까닭이다. 내년 2월 전당대회까지 치열한 당내 투쟁과 이로 인해 여당이 사실상의 유고 상태에 놓일 것으로 우려된다.‘햄릿’의 정치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당 지도부 10년의 역량을 쏟아붓기를 바란다.
jade@seoul.co.kr
2006-08-1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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