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자리가 아닌 곳에 자리를 잡으면 모든 것은 귀찮은 존재가 된다. 나는 많은 환경 문제가 그런 성가신 존재로부터 생긴다고 본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땅으로 무너지지 못하는 부러진 가지가 나무 세계의 골칫거리가 되는 것도 비슷하다.
“부러진 가지가 땅으로 채 무너지지 못하고/살아 있는 가지에 걸려 있다/ --중략-- /살아 있는 가지들은 서로에게 걸리지 않는데/제멋대로 뻗어도 다른 가지의 길을 막지 않는데”
살아있는 가지가 가야 할 길을 막는 죽은 가지는 무너져야 할 무엇이다. 그러나 이는 실상 사람 기준으로 보기 때문에 눈에 띄는 한 가지 모습이다. 부러진 나무에 기대어 사는 벌레와 그 벌레를 노리는 새의 입장에서 보면 바로 그곳은 풍성한 삶의 공간이다.
위의 시는 정끝별 시인의 시집 ‘삼천갑자 복사빛’에서 따온 것이다. 서울신문의 이 글에 내가 잘못 앉혔으면 마뜩잖은 일이 된다. 아름다운 시어도 자리를 잘못 잡으면 본래의 빛을 잃는다. 때로 사랑의 표현도 지나치면 귀찮은 몸짓이 되듯이.
이와 관련하여 오래 전에 있었던 영국 나비동호인들의 부전나비 보호운동으로부터 얻을 교훈이 있다. 나비동호인들은 유권자들의 투표권 행사를 의식하는 국회의원들을 설득하여 마련한 예산으로 부전나비가 서식하는 땅을 사들이고는 말뚝을 둘러치고 보호했다. 그런데 부전나비의 기세는 오히려 더욱 줄어들었다. 생태학자들의 도움으로 그 까닭을 알아보았다. 원인은 정도를 벗어난 지나친 애정공세에 있었다.
보호구역 안으로 소들이 들어오지 못하면서 수풀이 무성하게 우거졌다. 짙은 수풀은 음습한 그늘을 드리웠고, 그늘 아래 놓인 개미굴의 온도가 낮아졌다. 그리고 따뜻한 온도를 좋아하던 개미의 세력이 약해졌다. 그 개미들은 부전나비 애벌레를 물어다 키워주는 보모와 같은 존재였다.
보모를 약하게 했으니 부전나비가 제대로 보육될 수 없었다. 나비동호인의 과잉보호와 함께 부전나비는 그렇게 위축되었던 것이다. 사연을 알게 된 사람들은 보호 방식을 수정하여 소와 말이 보호구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개미들도 부전나비도 다시 기력을 찾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이 나라의 영향력 있는 분이 퇴임하면 마을숲이 있는 농촌에 살고 싶다는 표현을 한 모양이다. 그 한마디는 여러 사람의 관심을 전통 마을숲으로 이끌었다. 벌써 전통 마을숲을 가꾸기 위한 국가 예산액수가 언급되고, 복원 사업을 위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거기까지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갑자기 생긴 예산과 지나친 애정으로 섣부른 일을 저지를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자란다.
부디 노쇠한 고목을 치료한답시고 막무가내로 죽은 가지를 잘라내고 나무구멍을 막거나 보호하느라고 철조망을 둘러치는 일만은 없길 바란다. 오래된 전통 마을숲의 아름드리나무 둥치 안은 화려한 날갯짓을 하는 비단벌레가 깃들 수 있는 곳이다.
때로 그 나뭇가지 위에는 새끼를 키우거나 먹이를 노리는 천연기념물 붉은배매새와 황조롱이(천연기념물 제323호)도 있고, 딱따구리가 뚫은 나무구멍에는 원앙(천연기념물 제327호)이 보금자리를 틀기도 한다. 사람들의 지나친 토목행위와 수목치료로 그들의 삶터를 없애지는 않을지….
무엇보다 주민들과 그 전통 마을숲을 이용할 미래세대의 애정을 키우는 일이 우선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마을숲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문제를 진단하는 일이 먼저 이루어지면 좋겠다. 그것이 조상들의 지혜가 배인 전통 마을숲에 대한 마땅한 사랑의 방식이다.
왜냐하면 전통 마을숲은 긴 세월 동안 이어진 주민들의 적절한 관심과 활용으로 제 모습이 갖추어진 아주 특이한 경관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부러진 가지가 땅으로 채 무너지지 못하고/살아 있는 가지에 걸려 있다/ --중략-- /살아 있는 가지들은 서로에게 걸리지 않는데/제멋대로 뻗어도 다른 가지의 길을 막지 않는데”
살아있는 가지가 가야 할 길을 막는 죽은 가지는 무너져야 할 무엇이다. 그러나 이는 실상 사람 기준으로 보기 때문에 눈에 띄는 한 가지 모습이다. 부러진 나무에 기대어 사는 벌레와 그 벌레를 노리는 새의 입장에서 보면 바로 그곳은 풍성한 삶의 공간이다.
위의 시는 정끝별 시인의 시집 ‘삼천갑자 복사빛’에서 따온 것이다. 서울신문의 이 글에 내가 잘못 앉혔으면 마뜩잖은 일이 된다. 아름다운 시어도 자리를 잘못 잡으면 본래의 빛을 잃는다. 때로 사랑의 표현도 지나치면 귀찮은 몸짓이 되듯이.
이와 관련하여 오래 전에 있었던 영국 나비동호인들의 부전나비 보호운동으로부터 얻을 교훈이 있다. 나비동호인들은 유권자들의 투표권 행사를 의식하는 국회의원들을 설득하여 마련한 예산으로 부전나비가 서식하는 땅을 사들이고는 말뚝을 둘러치고 보호했다. 그런데 부전나비의 기세는 오히려 더욱 줄어들었다. 생태학자들의 도움으로 그 까닭을 알아보았다. 원인은 정도를 벗어난 지나친 애정공세에 있었다.
보호구역 안으로 소들이 들어오지 못하면서 수풀이 무성하게 우거졌다. 짙은 수풀은 음습한 그늘을 드리웠고, 그늘 아래 놓인 개미굴의 온도가 낮아졌다. 그리고 따뜻한 온도를 좋아하던 개미의 세력이 약해졌다. 그 개미들은 부전나비 애벌레를 물어다 키워주는 보모와 같은 존재였다.
보모를 약하게 했으니 부전나비가 제대로 보육될 수 없었다. 나비동호인의 과잉보호와 함께 부전나비는 그렇게 위축되었던 것이다. 사연을 알게 된 사람들은 보호 방식을 수정하여 소와 말이 보호구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개미들도 부전나비도 다시 기력을 찾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이 나라의 영향력 있는 분이 퇴임하면 마을숲이 있는 농촌에 살고 싶다는 표현을 한 모양이다. 그 한마디는 여러 사람의 관심을 전통 마을숲으로 이끌었다. 벌써 전통 마을숲을 가꾸기 위한 국가 예산액수가 언급되고, 복원 사업을 위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거기까지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갑자기 생긴 예산과 지나친 애정으로 섣부른 일을 저지를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자란다.
부디 노쇠한 고목을 치료한답시고 막무가내로 죽은 가지를 잘라내고 나무구멍을 막거나 보호하느라고 철조망을 둘러치는 일만은 없길 바란다. 오래된 전통 마을숲의 아름드리나무 둥치 안은 화려한 날갯짓을 하는 비단벌레가 깃들 수 있는 곳이다.
때로 그 나뭇가지 위에는 새끼를 키우거나 먹이를 노리는 천연기념물 붉은배매새와 황조롱이(천연기념물 제323호)도 있고, 딱따구리가 뚫은 나무구멍에는 원앙(천연기념물 제327호)이 보금자리를 틀기도 한다. 사람들의 지나친 토목행위와 수목치료로 그들의 삶터를 없애지는 않을지….
무엇보다 주민들과 그 전통 마을숲을 이용할 미래세대의 애정을 키우는 일이 우선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마을숲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문제를 진단하는 일이 먼저 이루어지면 좋겠다. 그것이 조상들의 지혜가 배인 전통 마을숲에 대한 마땅한 사랑의 방식이다.
왜냐하면 전통 마을숲은 긴 세월 동안 이어진 주민들의 적절한 관심과 활용으로 제 모습이 갖추어진 아주 특이한 경관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2006-06-2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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