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인 나조차도 디자인이란 막연히 ‘외제’의 부류에 속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문득 놀라며 ‘국산’ 디자인에 대한 관심어린 시선으로 우리 생활주변을 돌아본 적이 있다. 그리고 오랜 세월 우리의 일상 속에 묻혀 우리와 함께 성장해온 이태리타월과 모나미볼펜, 말표고무신의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발견은 ‘국산’으로서 내 존재의 근원에 대한 발견이라고 말해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 같다.
가끔씩 혼자 여행 떠나기를 좋아하는 나의 여행짐 속에는 ‘이태리타월’이 빠지지 않는다. 꼭 때를 밀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한국인 특유의 목욕습성이 나에게도 예외는 아닌 듯 이 꺼끌꺼끌한 천조각에 비누거품을 가득 묻혀 살갗을 문지를 때의 개운함은 나의 목욕 절차에 있어 생략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부피마저 단촐하여 여행짐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점도 나를 흡족하게 한다. 다만 한가지, 이태리타월의 그 획기적인 색상만큼은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아 외국 어느 여행지의 호텔에서 샤워를 한 후 어디에 그것을 감추어 두어야 할지 혼자 안절부절해하던 경험이 있다. 흰색이나 아이보리 계통의 욕실 인테리어의 상황에 이태리타월의 농익은 앵두빛이나 형광기를 더한 연두빛이 발산하는 위력은 호텔 메이드에게도 감당하기가 어려울 듯하여 도저히 방치해둔 채로 외출을 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태리타월을 감출 비닐 봉지를 잃어버려 부산히 주변을 살피던 중 물에 젖었음에도 안간힘을 쓰면서 자기의 존재감을 떨치는 그 색상이 마치 맨몸 하나로 버티며 어려운 시절을 이겨낸 한국인의 모습처럼 느껴진 적이 있다.1960년의 어느날부터 한국인의 목욕문화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불변의 입지를 굳혀온 이태리타월이야말로 한국적인 존재감을 지닌 디자인이라는 발견을 하게 된 것이다.
‘모나미볼펜’에 대한 국민적 감동은 탄생의 해였던 1963년이래로 긴 세월 변함없이 그 모양새가 유지되어온 것만으로도 부연의 설명이 필요없을 듯하다. 장지 손가락에 시커먼 흔적을 남겨가며 불편하게 잉크를 찍어 써야 했던 펜과 서민살림으로는 엄두를 내기 어려웠던 만년필 사이에서 볼펜은 정말 획기적인 대안이었을 것이다. 신문 한 부 값, 또는 버스표 한 장 값에 불과했던 15원으로 최신식의 편리함을 선사해 주었던 모나미볼펜은 디자인에 있어서도 이 이상 무엇을 더 욕심을 낼까 싶을 정도로 훌륭한 디자인 교과서처럼 느껴진다. 효율적인 기능을 갖추면서도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버리고 비워야 할 것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모나미볼펜의 디자인은 헛된 욕심을 버리고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왔던 한국인의 또다른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말표고무신’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게 된 여러 차례의 경험은 가히 통쾌할 만하다. 언젠가 스페인으로 가우디 건축기행을 함께 떠난 일행 중의 한 부인이 헐렁한 린넨 바지 아래 하얀 남자용 말표고무신을 받쳐 신은 모습이 얼마나 근사했던지. 그리고, 두타산 산행을 이끌어주었던 백두대간 지키미 회장님이 신고 있던 보라색 메탈릭 컬러의 말표고무신은 우리 디자이너들의 눈을 휘둥그레 만들면서 얼마나 갖고 싶게 만들었던지! 장담하건데, 내가 조금만 더 크고 날씬했더라면 나는 동대문 시장에서 노란색과 분홍색의 꽃무늬 몸빼 바지를 하나 사서 이 메탈릭의 패셔너블한 말표고무신을 신고 멋쟁이들의 파티에 나타났을 것이다.1943년 처음으로 등장하여 흰색과 검정 일색의 고무신에서 오늘날의 메탈릭 보라의 고무신을 만들어 내기까지 이땅의 대중과 더불어 부단한 발상의 전환을 연습해온 말표고무신의 흔적에는 부인할 수 없는 ‘국산’ 디자인의 힘이 배어 있다.
남과 다른 무엇을 지니고 있을 때 디자인은 힘을 얻는다. 그 힘은 획일적인 기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안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는 융통성의 잣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 힘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며, 오랜 세월 망설임없이 사람들의 주머니를 열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반세기를 넘나들며 우리 생활에 불변의 자리를 잡고있는 물건들에는 ‘국산’ 디자인만이 지닌,‘외제’와는 다른 무엇이 분명히 있을 것 같다.
이나미 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 바프 대표
가끔씩 혼자 여행 떠나기를 좋아하는 나의 여행짐 속에는 ‘이태리타월’이 빠지지 않는다. 꼭 때를 밀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한국인 특유의 목욕습성이 나에게도 예외는 아닌 듯 이 꺼끌꺼끌한 천조각에 비누거품을 가득 묻혀 살갗을 문지를 때의 개운함은 나의 목욕 절차에 있어 생략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부피마저 단촐하여 여행짐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점도 나를 흡족하게 한다. 다만 한가지, 이태리타월의 그 획기적인 색상만큼은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아 외국 어느 여행지의 호텔에서 샤워를 한 후 어디에 그것을 감추어 두어야 할지 혼자 안절부절해하던 경험이 있다. 흰색이나 아이보리 계통의 욕실 인테리어의 상황에 이태리타월의 농익은 앵두빛이나 형광기를 더한 연두빛이 발산하는 위력은 호텔 메이드에게도 감당하기가 어려울 듯하여 도저히 방치해둔 채로 외출을 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태리타월을 감출 비닐 봉지를 잃어버려 부산히 주변을 살피던 중 물에 젖었음에도 안간힘을 쓰면서 자기의 존재감을 떨치는 그 색상이 마치 맨몸 하나로 버티며 어려운 시절을 이겨낸 한국인의 모습처럼 느껴진 적이 있다.1960년의 어느날부터 한국인의 목욕문화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불변의 입지를 굳혀온 이태리타월이야말로 한국적인 존재감을 지닌 디자인이라는 발견을 하게 된 것이다.
‘모나미볼펜’에 대한 국민적 감동은 탄생의 해였던 1963년이래로 긴 세월 변함없이 그 모양새가 유지되어온 것만으로도 부연의 설명이 필요없을 듯하다. 장지 손가락에 시커먼 흔적을 남겨가며 불편하게 잉크를 찍어 써야 했던 펜과 서민살림으로는 엄두를 내기 어려웠던 만년필 사이에서 볼펜은 정말 획기적인 대안이었을 것이다. 신문 한 부 값, 또는 버스표 한 장 값에 불과했던 15원으로 최신식의 편리함을 선사해 주었던 모나미볼펜은 디자인에 있어서도 이 이상 무엇을 더 욕심을 낼까 싶을 정도로 훌륭한 디자인 교과서처럼 느껴진다. 효율적인 기능을 갖추면서도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버리고 비워야 할 것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모나미볼펜의 디자인은 헛된 욕심을 버리고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왔던 한국인의 또다른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말표고무신’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게 된 여러 차례의 경험은 가히 통쾌할 만하다. 언젠가 스페인으로 가우디 건축기행을 함께 떠난 일행 중의 한 부인이 헐렁한 린넨 바지 아래 하얀 남자용 말표고무신을 받쳐 신은 모습이 얼마나 근사했던지. 그리고, 두타산 산행을 이끌어주었던 백두대간 지키미 회장님이 신고 있던 보라색 메탈릭 컬러의 말표고무신은 우리 디자이너들의 눈을 휘둥그레 만들면서 얼마나 갖고 싶게 만들었던지! 장담하건데, 내가 조금만 더 크고 날씬했더라면 나는 동대문 시장에서 노란색과 분홍색의 꽃무늬 몸빼 바지를 하나 사서 이 메탈릭의 패셔너블한 말표고무신을 신고 멋쟁이들의 파티에 나타났을 것이다.1943년 처음으로 등장하여 흰색과 검정 일색의 고무신에서 오늘날의 메탈릭 보라의 고무신을 만들어 내기까지 이땅의 대중과 더불어 부단한 발상의 전환을 연습해온 말표고무신의 흔적에는 부인할 수 없는 ‘국산’ 디자인의 힘이 배어 있다.
남과 다른 무엇을 지니고 있을 때 디자인은 힘을 얻는다. 그 힘은 획일적인 기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안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는 융통성의 잣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 힘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며, 오랜 세월 망설임없이 사람들의 주머니를 열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반세기를 넘나들며 우리 생활에 불변의 자리를 잡고있는 물건들에는 ‘국산’ 디자인만이 지닌,‘외제’와는 다른 무엇이 분명히 있을 것 같다.
이나미 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 바프 대표
2006-02-09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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