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휴대전화의 삶/박홍기 논설위원

[길섶에서] 휴대전화의 삶/박홍기 논설위원

박홍기 기자
입력 2005-11-17 00:00
수정 2005-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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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씨는 휴대전화가 없다. 서울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 지방대 교수로 신분을 바꾸면서 아예 없앴다. 시도때도 없이 걸려 오는 휴대전화에 진력이 나서란다. 그러나 느긋하게 사는 법을 다시 배우고 싶다는 게 진짜 이유이다. 벌써 4개월째다. 대신 전화에 녹음장치를 설치했다. 용무가 있는 분들에게 메시지를 남길 것을 부탁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삐삐’로 불리던 비퍼를 찼을 때만해도 여유가 있었다. 번호가 찍히지 않던 시절의 삐삐가 울리면 당연히 회사로 알면 됐다. 번호가 나오던 삐삐 때에는 회사인지, 친구인지, 집인지, 거래처인지를 그나마 머리를 굴린 뒤 전화할 겨를도 있었다. 굳이 전화할 필요가 없는 귀찮은 번호도 적잖았기 때문이다. 휴대전화가 일반화되면서 바빠졌다. 울리는 전화를 안 받을 재간도 없다. 생각할 틈조차 주지 않는다.‘리얼 타임’의 반응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요즘 분 맞으세요.”라는 핀잔을 받기가 일쑤다. 사실 직장이나 가정은 별다른 변화가 없는데 왠지 정신이 없다.

H씨와 같은 이유가 아니더라도 단 며칠이라도 휴대전화를 놓고 지내면 어떨까 싶다. 우리에게 남아 있을 삶의 느긋함을 찾기 위해.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2005-11-1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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