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장관들, 나무보다 숲을 보라”/조덕현 공공정책부 차장

[데스크시각] “장관들, 나무보다 숲을 보라”/조덕현 공공정책부 차장

입력 2005-10-28 00:00
수정 2005-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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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맘때 정부의 일부 부처 사무실에 ‘거꾸로 가는 시계’가 배포됐다. 시계의 가는 방향과 숫자를 거꾸로 배열한 것이다. 오른쪽 방향을 따라 12,11,10 등의 순서로 배열했기 때문에 12,1,2,3 순서에 익숙한 우리에겐 분명 낯설었다.‘거꾸로 가는 시계’는 보수적이고 정해진 틀 속에서 생활하는 공무원들에게 발상을 전환하고 혁신적인 사고를 갖자는 취지에서 고안됐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정부내 움직임을 보면 정말 ‘거꾸로’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혁신을 하자.’는 정부 노력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새로운 방식으로 대국민 서비스의 질을 높이자는 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과연 정부가 하겠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하는 의문마저 들 때가 적지 않다.

각 부처는 10월 말 기준으로 이뤄지는 부처평가에 ‘올인’하는 모습이다.1년 동안 한 일에 대해 제대로 평가받고자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평가에 너무 치중,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앞뒤가 뒤바뀐 양상이다. 먼저 일을 제대로 하고, 그 뒤에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순서다. 그런데도 요즘 분위기는 평가를 위해 일을 하는 모양새다. 때문에 과거 혁신차원에서 과감히 버렸던 관행조차 슬그머니 되살아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회의다. 그동안 지나치게 회의가 많다는 지적이 일자 각 부처는 자발적으로 회의를 대폭 줄였었다. 그러나 평가 움직임과 함께 은근슬쩍 이런 것들이 다시 늘고 있다. 평가에 대한 대비가 제대로 됐는지 회의를 하고, 그 결과 부족하다고 판단하면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를 다시 소집하는 등 ‘회의 만능주의’가 부활된 듯한 느낌이다. 위에서 회의가 많아지면 밑에서도 똑같은 양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정작 업무는 뒷전인 셈이다.

최근 정부중앙청사 주변을 보더라도 그렇다.‘일하는 방식 개선’ 등 혁신 차원에서 다짐했던 것들이 꽁무니를 감춘 듯하다. 대신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업무 성과를 ‘뻥튀기’하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정부 합동 브리핑룸을 서로 이용하려는 기관간 갈등도 볼썽사납다. 알맹이는 없고 다분히 외부를 의식한 ‘전시행정’이 도졌다고 할 수 있다. 참여정부가 땅속에 묻어버리겠다고 큰소리쳤던 구시대의 악습들이 ‘평가’라는 이벤트 과정에서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이다.

평가는 구성원에게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또 그 결과에 따라 성과급을 나눠주고 기관장과 직원 인사에도 반영한다. 어찌 보면 인간 내면에 잠재해 있는 ‘욕심’을 자극해 경쟁심을 불러일으켜 보자는 속셈이 깔려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욕심은 건강한 경쟁관계 유지에 도움이 된다. 그런 측면에서 의도 자체를 폄하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러나 지금 각 부처의 모습은 제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볼 때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각 부처가 평가를 앞두고 이처럼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결국 평가를 잘 받으려는 기관장의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좋은 성적과 함께 자신의 ‘몸값’을 높여 더 좋은 자리로 이동하려거나, 더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물려 하는 ‘사심(私心)’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과욕은 화를 부른다. 특히 정부 정책은 더욱 그렇다. 장관의 임기가 1∼2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임기 중 결실을 보게 될 정책이 얼마나 되겠는가. 단기 처방으로 해결될 사안이 있는 반면 훗날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있는 사안이 더 많다. 그런데 대다수의 장관들은 임기 동안 결실을 보려고 한다.

이와 같은 부수적인 일에 치우치다 보면 자칫, 큰 것을 놓칠 수 있다. 진정 조직을 위한다면 당장 결실을 보려고 하는 것보다 새로 도입된 시스템의 구축에 비중을 둬야 한다. 아울러 후임자가 누가 오든 정책은 흔들림없이 계속 추진되도록 해야 한다. 평가는 훗날 받으면 된다. 따라서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아야 할 것이다.

조덕현 공공정책부 차장 hyoun@seoul.co.kr
2005-10-2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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