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강정구교수 사건’과 언론/진정회 성균관대 경제학과 4학년

[옴부즈맨 칼럼] ‘강정구교수 사건’과 언론/진정회 성균관대 경제학과 4학년

입력 2005-10-25 00:00
수정 2005-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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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말 강정구 교수가 한 인터넷 매체에 기고한 글이 이념논란을 거쳐 검찰독립, 국가정체성 논란으로까지 진화했다. 소위 ‘강정구 교수 필화사건’에는 강 교수 주장의 타당성 논란 외에도 국가보안법과 학문의 자유, 수사기관의 구속남발과 인권문제 등 여러 가지 쟁점이 얽혀 있다.

우리는 이러한 쟁점들에 대한 생산적 논의를 통해 우리 사회를 성숙시키는 계기로 삼았어야 했다. 전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지겨울 정도로 많이 일어났지만 이 사건이 또 문제가 된 것은,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관련 쟁점들을 생산적 논의로 이끌지 못한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사건 역시 그렇다. 학자 한 사람의 학문적 견해가 국민을 이념적으로 분열시키는 과정에 이르는 동안 언론은 제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일부 언론은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뉴스가치가 없는 이 사건을 처음부터 발 벗고 나서서 보도하고 원색적 사설을 남발하여 국민을 분열시키는 데 앞장섰다.

그런 점에서 이 사건에 관한 서울신문의 보도는 바람직한 언론의 역할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서울신문은 7월 말 강교수의 칼럼과 관련한 기사를 게재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인터넷 매체에 실린 강교수의 칼럼을 다음날 지면에 보도한 일부 보수언론의 기사에서 비롯됐다. 서울신문 10월14일자 ‘열린세상’에서 김민환 교수가 “전통적인 뉴스가치의 기준을 적용하면 강 교수의 주장은 기이성을 조금 가지고 있긴 하지만 흥미성도 사회적 중요성도 시의성도 없어 뉴스의 요건을 거의 갖추지 못한 셈”이라고 지적했듯이, 보도할 가치가 없는 것을 보도한 것이 이 사건의 시발점이었다.

일부 언론의 어젠다 설정이 성공하여 사건이 확대되자 서울신문은 10월14일자 사설을 통해 “우리 사회는 그러한 극단적인 견해에 국가안위가 위태로울 정도로 취약하지 않다.”고 전제하면서 “강 교수의 주장은 학문적인 논쟁을 거쳐 공개된 검증을 하는 것이 국가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며 색깔론으로 사회가 분열될 것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법무장관의 불구속수사 지휘가 검찰총장 사퇴파문으로 이어졌던 15일자 사설에서는 “구속 만능주의 풍토는 반드시 바뀌어야 하고 무죄추정의 원칙이 수사와 재판에서도 명실상부하게 지켜져야 한다.”며 인권수사의 쟁점이 이념논란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했다.

또 17일,18일자 사설을 통해 인권수사 원칙의 문제를 국기문란으로 몰고 간 보수진영의 행태를 비판하고 사건의 근저에 있는 국보법을 아직도 처리하지 못한 정치권을 질타했다. 이처럼 서울신문은 사건이 내포한 다양한 쟁점을 생산적 논의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관된 자세를 견지해 왔다.

학생으로서, 내가 이 사건의 쟁점 중에서 가장 눈여겨보는 것은 학문의 자유에 관한 것이다.‘학문의 자유’는 서구사회에서 오랜 논쟁을 거쳐 자유사회의 근본생명으로, 진리추구의 전제조건으로, 사회적으로 유용한 것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시민의 기본권으로 정립된 것이다. 또 “학문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학계와 대학사회의 몫”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학문의 자유란, 연구결과물의 표현이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할 위험성이 있는지에 대한 입증도 없이 대체로 애매모호하게 판시되는 ‘국가보안법상 이적성 여부’에 의해 쉽사리 제지당하는 자유였다. 게다가 이제는 정치권력보다 더 강력한 자본권력이 학문의 자유를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강정구 교수 제자들에 대해 취업상 불이익을 시사한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의 발언은 학생들에게 교수를 거부하라고 주문한 것과 다르지 않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학문의 자유가 갖는 민주주의적, 미래지향적 가치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가 활발해지길 기대하며 언론이 이러한 논의를 선도해주기 바란다.

진정회 성균관대 경제학과 4학년
2005-10-2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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