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세상의 수많은 다른 기업들과 달리 신문은 특정한 지리적인 환경 또는 조건 속에서 장사를 한다. 삼성전자는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으로 갈 수 있고 현대자동차는 미국 앨라배마의 몽고메리시에서 대접 받아가며 싼타페나 쏘나타를 생산해 낼 수 있다. 헤어 드라이어기를 만드는 중소기업 또한 멕시코나 말레이시아에 분공장을 두고 제품을 생산해 낼 수 있다. 생산품도 똑같은 이치다. 현대자동차가 차를 폴란드에 팔 수도 있고, 인도에 팔 수도 있다.
하지만 신문은 다르다. 신문이 생산해 내는 뉴스와 광고는 본래 신문이 존재하던 시장에서 모아지고 또 거의 대부분 그 곳에서만 팔린다. 그래서 신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처럼 신문만이 가지는 독특한 성격을 먼저 이해해야만 한다. 바로 독자라는 시장이다. 불행하게도 신문이 살아남을지 망할지 번창할지는 신문 지면 자체보다는 주어진 시장이 가진 기본적인 환경에 달려 있다. 신문사의 지면을 책임지는 간부가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시장, 즉 독자들의 변화다.
오늘날 신문이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할 독자는 젊은이들이다. 그들은 변덕스럽고 까다롭기까지 하다. 인터넷에 매달려 하루가 다르게 신문에서 멀어져 간다. 신문은 그들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서울신문의 일부 기사는 젊은이들을 ‘타자화(他者化)’ 하고 있다.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 감성이 기사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7월14일자 5면에는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부산 민생투어를 통해 대졸자 취업을 위해 110억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을 지원하겠다는 기사가 실렸다. 젊은 백수, 이른바 ‘이태백’의 눈으로 보면 이는 어마어마한 뉴스다. 그러나 뉴스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젊은이들의 반응도 물론 없었다. 젊은이들이 이러한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고 싶으면 인터넷 기사의 대글을 보는 것도 방법이다. 대글을 통해 그들의 원망과 욕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기사 바로 옆에는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짧게 실렸다. 대학생 61%가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잘못한다.”고 답했고, 그 이유에 대해 49.0%가 경기침체와 청년실업문제를 들었다고 한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취업문제로 얼마나 상처 받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더군다나 청년실업난의 이유로 무려 66.7%가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의 가슴이 용광로처럼 부글부글 끓고 마른 장작처럼 타들어가는데 지면은 단지 ‘그랬다더라.’ 하는 식으로만 전한다.
중요한 사실은 신문이 18세에서 24세의 연령층을 독자로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언젠가 고사해 버리고 말 것이라는 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서울신문뿐만 아니라 오늘날 많은 한국의 신문들은 젊은 층에 매력을 줄 만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지면은 대체로 가장이나 부모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부동산 구매, 교육, 재테크 등에 대한 정보를 주로 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들은 가정을 꾸리고 부모가 되는 시기를 20대 후반이나 30대로 미루고 있다. 따라서 결혼을 하지 않은 세대에 아파트 경매니 학군에 대한 정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도 컴퓨터 게임 등 젊은 독자들이 관심을 갖는 분야에 대한 심도 있는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젊은 독자들이 “신문을 읽을 시간이 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인터넷 등 다른 매체들과 비교해서 신문을 읽어서 얻을 수 있는 가치를 따져보았을 때 신문을 읽을 시간이 없어.”라는 의미인 것이다. 물론 지면이 독자시장의 변화라는 도전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모든 세대가 매력을 느끼도록 지면을 채우는 것은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었지만, 이것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은 눈길 끄는 지면을 위해 더욱 고달프고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한다.
김동률 KDI 초빙연구위원 yule21@empal.com
하지만 신문은 다르다. 신문이 생산해 내는 뉴스와 광고는 본래 신문이 존재하던 시장에서 모아지고 또 거의 대부분 그 곳에서만 팔린다. 그래서 신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처럼 신문만이 가지는 독특한 성격을 먼저 이해해야만 한다. 바로 독자라는 시장이다. 불행하게도 신문이 살아남을지 망할지 번창할지는 신문 지면 자체보다는 주어진 시장이 가진 기본적인 환경에 달려 있다. 신문사의 지면을 책임지는 간부가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시장, 즉 독자들의 변화다.
오늘날 신문이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할 독자는 젊은이들이다. 그들은 변덕스럽고 까다롭기까지 하다. 인터넷에 매달려 하루가 다르게 신문에서 멀어져 간다. 신문은 그들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서울신문의 일부 기사는 젊은이들을 ‘타자화(他者化)’ 하고 있다.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 감성이 기사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7월14일자 5면에는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부산 민생투어를 통해 대졸자 취업을 위해 110억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을 지원하겠다는 기사가 실렸다. 젊은 백수, 이른바 ‘이태백’의 눈으로 보면 이는 어마어마한 뉴스다. 그러나 뉴스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젊은이들의 반응도 물론 없었다. 젊은이들이 이러한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고 싶으면 인터넷 기사의 대글을 보는 것도 방법이다. 대글을 통해 그들의 원망과 욕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기사 바로 옆에는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짧게 실렸다. 대학생 61%가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잘못한다.”고 답했고, 그 이유에 대해 49.0%가 경기침체와 청년실업문제를 들었다고 한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취업문제로 얼마나 상처 받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더군다나 청년실업난의 이유로 무려 66.7%가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의 가슴이 용광로처럼 부글부글 끓고 마른 장작처럼 타들어가는데 지면은 단지 ‘그랬다더라.’ 하는 식으로만 전한다.
중요한 사실은 신문이 18세에서 24세의 연령층을 독자로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언젠가 고사해 버리고 말 것이라는 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서울신문뿐만 아니라 오늘날 많은 한국의 신문들은 젊은 층에 매력을 줄 만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지면은 대체로 가장이나 부모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부동산 구매, 교육, 재테크 등에 대한 정보를 주로 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들은 가정을 꾸리고 부모가 되는 시기를 20대 후반이나 30대로 미루고 있다. 따라서 결혼을 하지 않은 세대에 아파트 경매니 학군에 대한 정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도 컴퓨터 게임 등 젊은 독자들이 관심을 갖는 분야에 대한 심도 있는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젊은 독자들이 “신문을 읽을 시간이 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인터넷 등 다른 매체들과 비교해서 신문을 읽어서 얻을 수 있는 가치를 따져보았을 때 신문을 읽을 시간이 없어.”라는 의미인 것이다. 물론 지면이 독자시장의 변화라는 도전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모든 세대가 매력을 느끼도록 지면을 채우는 것은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었지만, 이것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은 눈길 끄는 지면을 위해 더욱 고달프고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한다.
김동률 KDI 초빙연구위원 yule21@empal.com
2005-07-1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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