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신문의 위기…신뢰의 위기/조태성 문화부 기자

[오늘의 눈] 신문의 위기…신뢰의 위기/조태성 문화부 기자

입력 2005-06-02 00:00
수정 2005-06-02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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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이론의 대가, 모더니티의 옹호자, 공론장 이론가, 유럽통합의 철학적 아버지…. 독일의 석학, 위르겐 하버마스에게 따라붙는 화려한 수식어들이다. 그런 그가 한국을 찾은 적이 있다. 석학인 데다 독일인인 만큼 한국 사람들은 끈질기게도 한국통일에 대해 ‘한말씀’을 부탁했다. 남긴 대답이 걸작이다.“그건 당신들이 걱정해야 할 문제다.”자신은 유럽인으로서 유럽의 미래를 고민했으니 한국의 미래는 한국인인 당신들이 고민하라고 쏘아붙인 것이다. 찬란한 타이틀이 붙은 외국인이 올 때마다 우르르 몰려서 한마디(?) 받아내고는 일희일비하는 한국인들의 우스꽝스러운 행태를 정확하게 짚어낸, 너무 정확해서 찜찜하기까지 한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학술과 미디어를 맡은 ‘죄’로 이런저런 국제회의에 참석하고 난 뒤, 이런 찜찜함은 더해간다.

1일 막을 내린 세계신문협회(WAN) 총회도 그랬다. 총회 첫날 개정 신문법에 대한 외국인들의 질문은 법안 내용을 제대로나 알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여론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각종 입법의 모범사례로 소개됐던 북유럽의 참석자조차 비슷한 질문을 하는 통에 저들에게 개정 신문법을 영어로 번역, 설명해준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할 정도였다. 더 가관인 것은 다음날 신문을 펼쳤을 때다. 이때다 하고 우르르 달려 들어 ‘WAN이 이렇게 말했는데‘라며 개정 신문법을 윽박질러 놓은 글들을 보고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신문의 위기는 서구 신문의 위기와 사뭇 차이가 있다. 수차례 조사에서 드러났듯 바로 ‘신뢰’의 위기다. 신문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를 외면한 채 ‘잘 사는 나라일수록 신문을 많이 읽는다.’고 떠들어봐야 ‘예수님 믿는 나라가 잘 사니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개신교 광신도의 궤변과 논리상 별 차이가 없다.

다음 WAN 총회에서는 우리가 ‘신뢰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자랑스럽게 발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태성 문화부 기자 cho1904@seoul.co.kr

2005-06-0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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