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민주주의 증진법안/이목희 논설위원

[씨줄날줄] 민주주의 증진법안/이목희 논설위원

입력 2005-03-04 00:00
수정 2005-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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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 직후 나폴레옹이 등장하자 유럽의 석학들은 흥분했다. 자유민주주의 전파자로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베토벤은 영웅교향곡을 지었고, 괴테도 나폴레옹을 칭송했다. 철학자 헤겔은 자신이 살던 예나에 나폴레옹군이 진입하자 “말을 탄 절대정신(세계정신)을 보았다.”고 말했다.

베토벤은 그러나 나폴레옹이 황제에 오르자 그에게 헌정한다는 뜻을 담은 영웅교향곡 속표지를 뜯어버렸다. 헤겔은 나폴레옹군에 의해 집이 약탈당하고, 대학이 폐쇄되어 직장까지 잃었다.‘공허한 자유이념의 한계’를 느낀 헤겔은 시대를 구원할 대안을 ‘국가’에서 찾게 된다.

선진 이념과 체제, 종교를 가진 집단이 그렇지 못한 집단을 반드시 교화시켜야만 하는가. 그 방법은 어찌해야 좋은가. 이런 논란은 인류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그리스 문화를 동방에 심겠다는 알렉산더의 꿈, 로마제국의 영화, 중세 십자군전쟁과 이슬람세력의 유럽 공격에서 근세의 제국주의론까지…. 동양의 중화(中華)사상도 마찬가지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2기 행정부의 주제어로 ‘전 세계적 민주주의 확산과 폭정 종식’을 내걸었다. 이를 구체화한 ‘민주주의 증진법’이 미국 상·하원에 상정됐다. 알렉산더와 나폴레옹을 잇는 어마어마한 구상이다.

20세기 공산주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헤겔의 변증법론에 따르면 언젠가 바뀌겠지만, 영미식 민주주의는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가장 나은 체제라고 인정받는다. 여기에 대적할 자 없는 ‘미국의 힘’이 실린다면 “2025년까지 45개 독재국가를 민주화하겠다.”는 주장이 실현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이 간과해선 안 될 부분이 있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가장 잔혹한 것은 종교전쟁이고, 다음이 이념전쟁이라고 한다.“나만이 옳다.”는 신념이 지나치면 독선이 된다. 폭력이 정당화되고, 목적을 위해 스스로 민주절차를 무시하기도 한다. 미국의 이라크점령을 하나의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이집트·레바논을 필두로 독재국가에 민주화 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의 영향이 클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변화시키려는 주 대상이다. 나폴레옹전쟁에서 보았듯, 집과 직장을 잃고서는 자유민주주의도 의미가 없다.‘민주주의 증진법’은 고립·무력보다는 개입·포용으로 북한을 자유화시키는데 활용되어야 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2005-03-04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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