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양말/우득정 논설위원

[길섶에서] 양말/우득정 논설위원

입력 2005-02-04 00:00
수정 2005-02-04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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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출근 때면 양말과 내의를 찾아 베란다로, 방으로 헤매고 다닌다. 지난 주말 빨래를 널 때 양말 대여섯 켤레, 내의 서너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옷장에는 늘 구멍 난 양말이나 누런 빛으로 얼룩진 내의밖에 없다. 혹시 하는 마음에 아들 녀석의 이불을 걷어젖히자 아비의 내의를 걸치고 있다. 머리맡에 벗어 던진 양말도 마찬가지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것일까.

그러고 보니 없는 살림이었음에도 어릴 때부터 형의 손길이 닿은 내의나 양말은 말할 것도 없고 스웨터조차도 기를 쓰고 입기를 거부했던 것 같다. 언젠가는 며칠전 어머니가 사준 양말도 형이 먼저 신었다는 이유로 몰래 쓰레기통에 내다버린 적도 있었다. 깔끔을 떨었다기보다는 지금 생각해 보니 그만큼 밴댕이 소갈머리였다. 물론 그 시절 우리 형제들은 아무리 다급해도 아버지의 내의나 양말에 손댈 엄두는 아예 내지도 못했다.

밤늦게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 녀석의 점퍼와 바지가 보지 못한 것이다. 누구의 것이냐는 물음에 친구들과 바꿔 입는 것이 유행이란다. 눈을 막 부라리려는 순간, 아내가 손을 잡아끈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생각하란다. 깔끔 떠는 것보다 덜렁거리는 것이 그래도 낫지 않으냐는 말과 함께.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2005-02-04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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