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국 여행에서 돌아왔다. 마지막 한달반을 로스앤젤레스에서 지냈는데 공교롭게 내가 묵은 곳이 한인타운 언저리였다. 처음 온 탓인지 말로 듣던 것보다 한인타운이 너무나 비대해서 놀랐고(거의 도시를 점령한 것 같은 분위기였다.), 식당이나 가게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멕시칸을 빼고는 온통 한인 천지라서 이상스러웠다. 한국어와 한글로 모든 것이 통하고, 한인방송도 있다. 한국의 그날 뉴스와 드라마도 본다. 한국에 있는 유명 식당의 간판은 여기 다 있다. 심지어는 내가 사는 시골 해장국집 간판까지 있다. 옷가게에 걸린 옷이나, 슈퍼마켓의 식품도 한국 것이다. 물론 그 유명한 부동산값 올리기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전역에서 부동산 값이 최고로 올랐고 더 오를 전망이란다. 이 낯선 땅에서 그들이 이룬 것은 어찌보면 사뭇 대견하기도 하고 고무적인데 그래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이들은 스스로 고립된 것은 아닐까? 백인 사회에 섞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있던 집 어머니가 여기서는 약에 쓰려해도 백인은 구경할 수가 없다고 해서 우리는 함께 웃었지만 그리 산뜻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미국이라는 땅에 살면서 꼭 이렇게 몰려서 가재 제살 파먹듯이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자동차로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한인 방송을 듣게 되었는데 누군가가 신랄한 한인비평을 하고 있었다. 백인들 앞에서는 제대로 얼굴도 못 들면서 히스패닉이나 흑인들에게는 너무나 무례하고 난폭한 언사를 일삼는 한인들이 많다면서 자성을 촉구하고 있었다. 또 빌딩이나 아파트를 소유한 한인들이 임차인들을 자기집 하인 대하듯 무례하게 대하고, 임대료만 챙기고 제대로 관리조차 안 해줘서 고소 당해 조사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반성은커녕 괜히 시끄럽게 전화질을 해서 말썽이라며 화를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래 살던 백인들이 이 지역을 떠났고, 결국 다른 데로 가려야 갈 수 없는 히스패닉과 한인만이 남게 되었다는데, 사실 이 또한 그리 낯선 이야기는 아니었다.
우리 교포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히스패닉이나 흑인을 잡종이라 부른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심사가 편치 않아서 한번은 참지 못하고 백인들도 우리를 그렇게 부를 거라고 찔렀다.
언젠가 20년 넘게 여행사를 경영했다는 사람의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여행지로 한국 남자들은 대개 우리보다 못사는 동남아를 선호하고 여자들은 우리보다 잘 사는 선진국을 택하는 수가 많다고 했다. 남자들은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 가서 거들먹거리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남자 여자로 나눌 일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동남아에 가서 저지르는 갖가지 추태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그게 외국에서만 있는 일도 아니다. 당장 우리나라에 와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하는 온갖 무례와 악행과 후안무치한 처우를 일일이 여기서 열거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예의와 체면을 중시한다고 배웠는데, 왜 이렇게 변한 것일까? 혹시 돈만 좇아서 아등바등 정신없이 뛰어온 지난 60년이 우리를 이렇게 황폐하고 부끄러운 몰골로 변하게 한 것은 아닐까?
자고 나면 듣는 소리가 경제, 경제다. 대통령도 연두회견에서 온통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다짐을 했고 모두들 다행이라며 한숨을 쉬는 눈치다. 대통령이 나선다고 그리 뾰족한 수가 있을까 싶지만 지금까지 못된 것은 모두 대통령 탓이라고 난리였으니 두고 볼 일이다.
새해랍시고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는 으레 희망과 꿈을 이야기하고,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인심 좋게 뿌려준다. 그럴 때마다 내 자신에게 속으로 질문을 하게 된다. 올해는 정말 희망이 있어 보이는가, 내 꿈은 무엇인가. 거의 백수나 다름없는 나도 이제 이 한해 먹고 살 일을 걱정해야겠지만 그래도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지 자꾸 다른 꿈을 꾼다.
올해에는 우리가 좀더 사람답게 살게 되기를. 남을 해하지 않고, 자기보다 힘든 사람을 돌아보며, 부끄러움을 알고 의젓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되기를.
김민숙 소설가
미국 전역에서 부동산 값이 최고로 올랐고 더 오를 전망이란다. 이 낯선 땅에서 그들이 이룬 것은 어찌보면 사뭇 대견하기도 하고 고무적인데 그래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이들은 스스로 고립된 것은 아닐까? 백인 사회에 섞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있던 집 어머니가 여기서는 약에 쓰려해도 백인은 구경할 수가 없다고 해서 우리는 함께 웃었지만 그리 산뜻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미국이라는 땅에 살면서 꼭 이렇게 몰려서 가재 제살 파먹듯이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자동차로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한인 방송을 듣게 되었는데 누군가가 신랄한 한인비평을 하고 있었다. 백인들 앞에서는 제대로 얼굴도 못 들면서 히스패닉이나 흑인들에게는 너무나 무례하고 난폭한 언사를 일삼는 한인들이 많다면서 자성을 촉구하고 있었다. 또 빌딩이나 아파트를 소유한 한인들이 임차인들을 자기집 하인 대하듯 무례하게 대하고, 임대료만 챙기고 제대로 관리조차 안 해줘서 고소 당해 조사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반성은커녕 괜히 시끄럽게 전화질을 해서 말썽이라며 화를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래 살던 백인들이 이 지역을 떠났고, 결국 다른 데로 가려야 갈 수 없는 히스패닉과 한인만이 남게 되었다는데, 사실 이 또한 그리 낯선 이야기는 아니었다.
우리 교포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히스패닉이나 흑인을 잡종이라 부른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심사가 편치 않아서 한번은 참지 못하고 백인들도 우리를 그렇게 부를 거라고 찔렀다.
언젠가 20년 넘게 여행사를 경영했다는 사람의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여행지로 한국 남자들은 대개 우리보다 못사는 동남아를 선호하고 여자들은 우리보다 잘 사는 선진국을 택하는 수가 많다고 했다. 남자들은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 가서 거들먹거리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남자 여자로 나눌 일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동남아에 가서 저지르는 갖가지 추태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그게 외국에서만 있는 일도 아니다. 당장 우리나라에 와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하는 온갖 무례와 악행과 후안무치한 처우를 일일이 여기서 열거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예의와 체면을 중시한다고 배웠는데, 왜 이렇게 변한 것일까? 혹시 돈만 좇아서 아등바등 정신없이 뛰어온 지난 60년이 우리를 이렇게 황폐하고 부끄러운 몰골로 변하게 한 것은 아닐까?
자고 나면 듣는 소리가 경제, 경제다. 대통령도 연두회견에서 온통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다짐을 했고 모두들 다행이라며 한숨을 쉬는 눈치다. 대통령이 나선다고 그리 뾰족한 수가 있을까 싶지만 지금까지 못된 것은 모두 대통령 탓이라고 난리였으니 두고 볼 일이다.
새해랍시고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는 으레 희망과 꿈을 이야기하고,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인심 좋게 뿌려준다. 그럴 때마다 내 자신에게 속으로 질문을 하게 된다. 올해는 정말 희망이 있어 보이는가, 내 꿈은 무엇인가. 거의 백수나 다름없는 나도 이제 이 한해 먹고 살 일을 걱정해야겠지만 그래도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지 자꾸 다른 꿈을 꾼다.
올해에는 우리가 좀더 사람답게 살게 되기를. 남을 해하지 않고, 자기보다 힘든 사람을 돌아보며, 부끄러움을 알고 의젓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되기를.
김민숙 소설가
2005-01-2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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