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박정희 콤플렉스 벗기/이용원 논설위원

[서울광장] 박정희 콤플렉스 벗기/이용원 논설위원

입력 2005-01-25 00:00
수정 2005-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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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0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해이기 때문인가, 올해는 벽두부터 과거사·과거 인물에 대한 평가가 봇물 터지듯 이어진다. 그 가운데서도 발군은 역시 박정희 전대통령(이하 박정희)이다. 신년특집으로 각 언론사가 조사한 위대한 인물 순위를 보면 평가 기준, 선정 주체에 상관없이 그가 1위를 독차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예컨대 ‘광복후 대한민국을 빛낸 정치인’도,‘국정 수행 능력이 뛰어난 대통령’도,‘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데 공헌한 인물’도 첫손가락은 모두 박정희라는 답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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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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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박정희라는 존경할 만한 위인을 가진 것으로 만족하면 그만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최근 박정희에 관한, 그리고 그가 이끈 시대에 벌어진 일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면서 박정희의 공과(功過)를 둘러싼 논란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한·일협정 과정을 보여준 일부 문서의 공개이다. 박정희 정권은 한·일 협상에서 일제 피해자의 개인 배상을 포기하는 대신 경제협력자금을 들여왔다. 그 경협자금을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자해 산업 발전을 이끈 것은 시대상황으로 볼 때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러나 개인 피해를 보상해 주려는 노력 없이 형식적으로 그 절차를 끝낸 것은 씻을 수 없는 과오임도 또한 분명하다. 과연 우리는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박정희 시대(1961∼1979년)를 손쉽게 판단하는 방법은 먼저 그 명과 암을 명확하게 가리는 것이다. 긍정적인 면은 ‘한강의 기적’으로 표현되는 고도 성장이다. 이 기간에 우리 사회는 산업화를 이뤄 누대의 가난을 벗었다. 민족국가의 틀을 확립하고 주체적인 경제단위를 형성해 세계 속에 한국의 위상을 자리잡았다. 남북간 경쟁에서도 비교우위를 확실하게 점하였고 그 결과는 지금까지 이어진다. 반면 부정적인 면도 결코 작지 않았다.

4·19혁명으로 싹튼 민주주의는 꽃 피기도 전에 꺾여나갔다. 후반기의 유신 체제는 유례없는 독재정권으로서 인권·민권의 암흑기였다. 고귀한 인명이 숱하게 희생돼 아직도 사회의 아픔으로 남아 있다. 남북관계는 통일을 지향하기보다는 정권의 안보·강화 차원에서 악용됐다. 특권재벌 위주의 성장정책은 극심한 빈부격차와 불균형 발전의 원인이 됐다.

박정희 시대의 명과 암은 이처럼 뚜렷하다. 아울러 한 시대를 평가하는 일이 밝음 또는 어두움 한쪽으로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점도 분명하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양쪽을 아우르되 종합점수를 플러스로 줄지, 마이너스로 줄지는 개인 가치관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박정희 정권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지나치게 부정적이다. 그 하나의 현상으로서 ‘박정희 향수’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박정희 향수’에는 허수가 적지 않게 포함돼 있으리라 본다. 그가 사망한 1979년 성인이 된 사람(59년생)은 올해 46세가 된다. 따라서 지금의 30대에게 박정희는 체험의 대상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글머리에 밝힌 ‘국정 수행 능력이 뛰어난 대통령’에 30대의 절반이 박정희를 꼽은 까닭은, 그후의 대통령들에 대한 실망이 가져온 반사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곧 박정희가 잘해서라기보다는 반사이익을 누린 것이 ‘박정희 향수’의 한 원인으로 보인다.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지만, 일본군 장교 출신에 독재의 상징이 된 인물이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이 되는 현상은 정상적이지 않다. 이는 현역 정치인들에게 매서운 채찍으로 작용되어야 한다. 죽은 제갈공명에게 산 사마중달이 쫓기듯 26년 전에 끝난 박정희의 향수에 쫓겨다니지 않으려면 그보다 나은 정치를 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이 시대 정치인들의 숙명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2005-01-2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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