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겨울나무가 좋아지기 시작한 것은.
하나뿐인 아들이 입대하던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춥고 바람도 많았다. 보초를 서고 있을 아들 생각에 새벽잠을 깨어 뒤척이고 있을 때면 창밖 느티나무는 나보다 먼저 깨어 울고 있었다.
저도 내 맘을 아는 듯 나도 홀로 밤새우는 저를 아는 듯 그렇게 그해 겨울 새벽 바람에 아픔을 같이한 후로 겨울나무가 좋아졌다. 신부 화장을 막 끝낸 봄 숲도, 성숙한 여인의 여름 숲도, 떠나 보낼 자식 위해 고운 옷 입혀 놓은 가을 숲도 아름답지만 겨울 숲의 그 단아함이 더욱 좋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 덮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오늘도 겨울바람 타고 이원수님의 ‘겨울나무’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한 겨울을 벌거벗은 몸으로 바람과 눈비 맞으며 서 있는 겨울나무를 보노라면 불쌍하다는 느낌보다는 그 의연함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겨울나무를 좋아하는 것은 나무를 가장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잎과 꽃에 가려 나무 그 자체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아니 사람들은 나무보다는 꽃과 잎을 보고 아름답다고 칭찬한다. 그러나 잎 떨구고 바람 앞에 서 있는 겨울나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여리디 여린 가지를 수없이 매달고 하늘 향해 기도하고 서 있는 느티나무, 아까시나무. 굵고 힘찬 가지를 뻗어 지나가는 바람을 잡으려는 물푸레나무, 감나무. 나뭇가지보다 큰 꽃눈을 꼭대기에 매단 채 바람아 불어라 눈아 오거라 그래도 봄은 오리니 내 먼저 오는 봄을 맞으리라며 꿈에 젖어 있는 목련나무.
겨울나무가 아름답다. 소나무·잣나무처럼 늘 푸른 나무보다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홀로 서 있는 나무들이 더 아름답다. 내가 화가라면 맑은 하늘을 떠받들고 서 있는 한 그루 겨울나무를 화폭에 담고 싶다. 겨울나무가 아름다운 것은 모든 것 다 벗어 주고도 당당한 그 모습 때문이리라.
겨울나무에겐 부끄럽거나 감추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는 듯하다. 이런저런 흉허물에 남들이 알까 봐 불안해하거나 생각만 해도 부끄러워지는 속마음을 생각하면 겨울나무를 바라보는 것조차 두려워진다. 그러기에 이 겨울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누렇게 변색한 잎새를 달고 있는 겨울나무를 보노라면 아둥바둥 손아귀에 감싸 쥐고 놓지 못하는 미련한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측은하다.
겨울나무가 정말로 아름다운 것은 꿈이 있다는 것이다. 겨울나무는 새 봄에 피워 올린 잎과 꽃들을 겨울눈(芽)속에 간직한 채 한겨울을 지낸다. 겨울눈 중에는 꽃으로 피어날 꽃눈이 있고 잎으로 피어날 잎눈도 있다. 꽃눈과 잎눈을 함께 가지고 있는 나무들도 있다.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나무들은 이미 겨울눈 속에서 꽃으로 피어날 준비를 다 하고 있다. 준비한 자만이 오는 봄을 먼저 맞을 수 있음을 나무는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겨울나무가 세찬 눈바람을 맞으면서도 하늘을 우러러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것은 봄에 피워 올릴 꿈과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꿈이 있는 자는 결코 좌절하지 않는 법이다.
한 해가 시작되었다. 경제가 어렵다고 걱정들이다. 밖에서 들려오는 지진과 해일 등 자연재해도 남의 일만이 아니다. 힘겨워도 겨울나무처럼 꿈과 희망을 품고 이 한 해를 시작하자.
한해를 시작하며 불러본다. 아, 겨울나무여, 본받아야 할 나의 표상이여! 나의 꿈이여!
조연환 산림청장
하나뿐인 아들이 입대하던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춥고 바람도 많았다. 보초를 서고 있을 아들 생각에 새벽잠을 깨어 뒤척이고 있을 때면 창밖 느티나무는 나보다 먼저 깨어 울고 있었다.
저도 내 맘을 아는 듯 나도 홀로 밤새우는 저를 아는 듯 그렇게 그해 겨울 새벽 바람에 아픔을 같이한 후로 겨울나무가 좋아졌다. 신부 화장을 막 끝낸 봄 숲도, 성숙한 여인의 여름 숲도, 떠나 보낼 자식 위해 고운 옷 입혀 놓은 가을 숲도 아름답지만 겨울 숲의 그 단아함이 더욱 좋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 덮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오늘도 겨울바람 타고 이원수님의 ‘겨울나무’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한 겨울을 벌거벗은 몸으로 바람과 눈비 맞으며 서 있는 겨울나무를 보노라면 불쌍하다는 느낌보다는 그 의연함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겨울나무를 좋아하는 것은 나무를 가장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잎과 꽃에 가려 나무 그 자체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아니 사람들은 나무보다는 꽃과 잎을 보고 아름답다고 칭찬한다. 그러나 잎 떨구고 바람 앞에 서 있는 겨울나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여리디 여린 가지를 수없이 매달고 하늘 향해 기도하고 서 있는 느티나무, 아까시나무. 굵고 힘찬 가지를 뻗어 지나가는 바람을 잡으려는 물푸레나무, 감나무. 나뭇가지보다 큰 꽃눈을 꼭대기에 매단 채 바람아 불어라 눈아 오거라 그래도 봄은 오리니 내 먼저 오는 봄을 맞으리라며 꿈에 젖어 있는 목련나무.
겨울나무가 아름답다. 소나무·잣나무처럼 늘 푸른 나무보다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홀로 서 있는 나무들이 더 아름답다. 내가 화가라면 맑은 하늘을 떠받들고 서 있는 한 그루 겨울나무를 화폭에 담고 싶다. 겨울나무가 아름다운 것은 모든 것 다 벗어 주고도 당당한 그 모습 때문이리라.
겨울나무에겐 부끄럽거나 감추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는 듯하다. 이런저런 흉허물에 남들이 알까 봐 불안해하거나 생각만 해도 부끄러워지는 속마음을 생각하면 겨울나무를 바라보는 것조차 두려워진다. 그러기에 이 겨울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누렇게 변색한 잎새를 달고 있는 겨울나무를 보노라면 아둥바둥 손아귀에 감싸 쥐고 놓지 못하는 미련한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측은하다.
겨울나무가 정말로 아름다운 것은 꿈이 있다는 것이다. 겨울나무는 새 봄에 피워 올린 잎과 꽃들을 겨울눈(芽)속에 간직한 채 한겨울을 지낸다. 겨울눈 중에는 꽃으로 피어날 꽃눈이 있고 잎으로 피어날 잎눈도 있다. 꽃눈과 잎눈을 함께 가지고 있는 나무들도 있다.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나무들은 이미 겨울눈 속에서 꽃으로 피어날 준비를 다 하고 있다. 준비한 자만이 오는 봄을 먼저 맞을 수 있음을 나무는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겨울나무가 세찬 눈바람을 맞으면서도 하늘을 우러러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것은 봄에 피워 올릴 꿈과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꿈이 있는 자는 결코 좌절하지 않는 법이다.
한 해가 시작되었다. 경제가 어렵다고 걱정들이다. 밖에서 들려오는 지진과 해일 등 자연재해도 남의 일만이 아니다. 힘겨워도 겨울나무처럼 꿈과 희망을 품고 이 한 해를 시작하자.
한해를 시작하며 불러본다. 아, 겨울나무여, 본받아야 할 나의 표상이여! 나의 꿈이여!
조연환 산림청장
2005-01-1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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