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未堂의 국화/이용원 논설위원

[씨줄날줄] 未堂의 국화/이용원 논설위원

입력 2004-11-06 00:00
수정 2004-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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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未堂) 서정주 시인(1915∼2000)의 고향이자, 현재 묘소와 시문학관이 자리한 전북 고창군의 질마재 일대가 노란 국화꽃으로 뒤덮였다고 한다. 그를 추모하는 이들이 지난봄 묘소 주변 5000여평에 심은 국화 7만포기가 일제히 피어났다는 것이다.

‘미당의 시’하면 대부분 ‘국화 옆에서’부터 떠올린다. 시 자체가 좋기도 하려니와 누구나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접한, 익숙한 시이기 때문일 터이다. 그 덕인지 한국인의 애송시를 조사하면 늘 선두를 다투는 시이다.

그러나 이 가을 ‘미당의 국화밭’ 풍경을 대하는 마음은 왠지 흔연하지가 않다. 그 좋아했던 시 ‘국화 옆에서’가 친일을 주제로 했다는 주장이 앙금처럼 가슴에 남아 있어서이다.

미당이 친일을 한 사실은 새삼스러운 논쟁거리가 아니다. 일제강점기 말 그는 시 ‘오장 마쓰이 송가’를 발표, 조선 젊은이들에게 ‘가미카제 특공대’에 자원하도록 부추기는 등 변명의 여지가 없는 행각을 벌였다. 문제는, 광복 후 작품인 ‘국화 옆에서’조차도 친일 시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대두됐다는 점이다.

2001년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한 한 문학평론가는 시어(詩語) 가운데 ▲‘한송이 노오란 국화’는 일왕을 상징하며 ▲‘내 누님’같다는 표현 또한 우리의 전통 이미지가 아니라 일본 여신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2000년에는 한 역사학자가,‘국화 옆에서’가 칭송한 대상은 ‘원숙한 경지에 이른 누님’이 아니라 당대(1947년 발표)의 실력자인 이승만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친일 청산’은 이 시대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이다. 그냥 넘어갈 수도, 다음 세대에 넘길 수도 없는 어려운 숙제이다. 다만 어느 선에서 ‘정리’해야 하는가는 우리사회 구성원 모두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미당을 놓고 보더라도 그가 캐어내 다듬은 영롱한 시어들을 이름 석자와 함께 파묻을 것인가, 아니면 친일의 죄 비록 크나 우리말을 보석으로 일구어낸 더욱 큰 공을 인정하여 일정 부분 사면할 것인가.

미당의 묘역을 뒤덮은 노란 꽃세상을 보며 미당의 친일은 단죄하되, 시어만은 살리는 현명한 길은 없을지 괜히 마음이 답답해진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2004-11-0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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