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말엽 요한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것은 서구 문명사에서 굵직한 획을 그은 크나큰 사건이었다.구술 매체를 대체한 활자 매체 시대에 이르러 인간의 의식 전반에 걸쳐 그야말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구술 문화가 지혜나 슬기에 무게를 실었다면 활자 매체는 지식에 무게를 실었다.금속 활자가 발명되지 않았더라면 서구 세계는 계몽주의는커녕 그 컴컴한 중세의 터널을 아직도 빠져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20세기 중엽에 들어와 활자 매체는 마침내 영상·전자 매체에 그동안 제왕처럼 누리던 자리를 내어준다.컴퓨터의 발명과 그에 따른 인터넷의 보급은 인간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데이터를 바이트 단위로 처리하는 영상·전자 문화에서는 구술 문화나 활자 문화와는 달리 지혜나 지식보다는 정보에 훨씬 더 무게를 싣는다.서양 근대 학문에 불을 지핀 프란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하였지만 정보를 돈을 주고 팔고 산다는 정보 시대에 “정보는 곧 힘”이라고 할 수 있다.그리하여 이제 문맹(文盲)이 아니라 ‘컴맹’과 ‘넷맹’을 말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런데 빛이 있으면 으레 그늘이 있듯이 이 정보 사회도 순기능에 못지않게 역기능이 있다.언뜻 인터넷을 통한 정보가 무궁무진한 것처럼 보인다.안방에 앉아 손가락 하나만 까닥하면 5대양 6대륙에 흩어져 있는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정보의 바다’라는 말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일컫는 표현이다.그러나 인터넷 검색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듯이 막상 이 정보의 바다에서 유용한 정보를 낚아 올리기보다는 자칫 익사하기 십상이다.인터넷을 통한 정보는 거의 대부분 쓰레기 정보라고 해도 그렇게 틀리지 않다.이렇게 쓰레기와 다름없는 정보가 범람하는 현상을 두고 어떤 학자는 ‘인포카오스(infochaos)’라고 부른다.
얼마 전 미국의 아동옹호단체인 ‘아동연합’은 한 보고서에서 컴퓨터가 어린이의 신체 발달은 말할 것도 없고 정신 건강과 발달에도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고 밝혀 큰 관심을 끌었다.“컴퓨터는 어린이들에게 시력 저하나 비만 같은 신체적 악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창의성을 떨어뜨리고 인간 관계를 악화시키는 등 정신발달 장애를 유발하기 쉽다.”고 지적한다.컴퓨터를 지나치게 사용하면 광기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컴퓨터가 군림하는 정보 시대에 사람들은 좀처럼 책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컴퓨터 앞에 하루에도 몇 시간씩 앉아 있으면서도 책을 읽는 것은 여간 꺼려하지 않는다.학생들은 입학시험과 관련한 책만 읽으려 하고,어른들은 어쩌다 주간지나 월간 잡지를 읽는 것이 고작이다.지금 출판사와 서점은 책이 팔리지 않아 문을 닫아야 할 형편에 있다.시중에서 팔리는 책마저 두고두고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 일회용 용품처럼 한 번 읽고 버려도 좋은 그런 책들이 거의 대부분이다.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듯이 악서도 양서를 쫓아내는 것이다.이러다가는 서점이나 도서관은 모두 없어지고 책들이 역사적 유물로 박물관에 소장될 날이 오게 될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인쇄된 종이에서 지식이나 정보를 얻는다는 것 이상의 큰 의미를 지닌다.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삶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문화와 역사를 되돌아본다.또한 책을 쓴 저자와 무언(無言)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요,삶에 대하여 깊이 있게 관조하는 것이다.여름도 한풀 꺾이고 가을이 손짓하는 이 계절 현란한 컴퓨터 모니터에서 잠시 눈을 돌리고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겨볼 때이다.
김욱동 서강대 영문과 교수·문학평론가
그런데 빛이 있으면 으레 그늘이 있듯이 이 정보 사회도 순기능에 못지않게 역기능이 있다.언뜻 인터넷을 통한 정보가 무궁무진한 것처럼 보인다.안방에 앉아 손가락 하나만 까닥하면 5대양 6대륙에 흩어져 있는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정보의 바다’라는 말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일컫는 표현이다.그러나 인터넷 검색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듯이 막상 이 정보의 바다에서 유용한 정보를 낚아 올리기보다는 자칫 익사하기 십상이다.인터넷을 통한 정보는 거의 대부분 쓰레기 정보라고 해도 그렇게 틀리지 않다.이렇게 쓰레기와 다름없는 정보가 범람하는 현상을 두고 어떤 학자는 ‘인포카오스(infochaos)’라고 부른다.
얼마 전 미국의 아동옹호단체인 ‘아동연합’은 한 보고서에서 컴퓨터가 어린이의 신체 발달은 말할 것도 없고 정신 건강과 발달에도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고 밝혀 큰 관심을 끌었다.“컴퓨터는 어린이들에게 시력 저하나 비만 같은 신체적 악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창의성을 떨어뜨리고 인간 관계를 악화시키는 등 정신발달 장애를 유발하기 쉽다.”고 지적한다.컴퓨터를 지나치게 사용하면 광기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컴퓨터가 군림하는 정보 시대에 사람들은 좀처럼 책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컴퓨터 앞에 하루에도 몇 시간씩 앉아 있으면서도 책을 읽는 것은 여간 꺼려하지 않는다.학생들은 입학시험과 관련한 책만 읽으려 하고,어른들은 어쩌다 주간지나 월간 잡지를 읽는 것이 고작이다.지금 출판사와 서점은 책이 팔리지 않아 문을 닫아야 할 형편에 있다.시중에서 팔리는 책마저 두고두고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 일회용 용품처럼 한 번 읽고 버려도 좋은 그런 책들이 거의 대부분이다.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듯이 악서도 양서를 쫓아내는 것이다.이러다가는 서점이나 도서관은 모두 없어지고 책들이 역사적 유물로 박물관에 소장될 날이 오게 될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인쇄된 종이에서 지식이나 정보를 얻는다는 것 이상의 큰 의미를 지닌다.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삶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문화와 역사를 되돌아본다.또한 책을 쓴 저자와 무언(無言)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요,삶에 대하여 깊이 있게 관조하는 것이다.여름도 한풀 꺾이고 가을이 손짓하는 이 계절 현란한 컴퓨터 모니터에서 잠시 눈을 돌리고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겨볼 때이다.
김욱동 서강대 영문과 교수·문학평론가
2004-08-1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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