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미국제국의 출현/김영호 성신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열린세상] 미국제국의 출현/김영호 성신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입력 2004-07-06 00:00
수정 2004-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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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의 학술지,신문,잡지들은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제국(帝國)으로 볼 것인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미국인들은 제국이라는 표현만 들어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그러나 국력의 지표를 살펴보면 미국이 로마제국 이후 가장 강력한 제국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테러전쟁 비용을 포함하면 미국의 국방비는 전세계 국방비의 50%에 육박하고 미국의 국내총생산은 세계 경제의 30%를 넘어섰다.

미국 제국의 등장은 냉전 붕괴의 직접적 산물이다.이미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은 각자의 영향권 내에서 제국적 질서를 창출했다.이들의 생사를 건 투쟁은 동의와 협력에 기초한 다자주의적 제국 질서를 창출하고 운영한 미국의 승리로 돌아갔다.이 시점에서 역사를 되돌아보면 20세기는 미국으로 힘이 집중화되는 과정이었고 미국 제국으로의 전환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냉전 시기 미국의 국방비는 국내총생산(GDP)의 9%였지만 지금은 3.2%에 불과하다.이 수치를 보면 미국 제국이 과도한 국방비 부담 때문에 조만간 쇠퇴할 것 같지는 않다.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한국은 미국의 제국적 질서 하에서 국익을 정의하고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따라서 중요한 것은 강자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에 편승할 것이 아니라 미국이 어떤 종류의 제국인지를 냉정하게 분석하는 것이다.이러한 분석에 기초하여 우리 대외정책의 전략적 비전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 하는 점을 밝히는 것이다.노무현정부의 외교·안보 전략가들이 이런 논의를 주도해 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노무현 정부의 경우 대외정책 결정이 지나치게 국내정치의 영향을 받음으로써 외교정책의 독자성 확보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물론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내정치적 변수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그만큼 뚜렷한 국가전략적 비전을 갖고 국민을 설득하려는 대통령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미국은 식민지 없는 비공식 제국이다.14개의 자치령을 갖고 있지만 전세계 영토의 4분의1을 직접 통치했던 영국식의 공식적 제국과는 다르다.미국 제국은 정보화시대의 제국이기 때문에 영토 점령과 직접 지배를 필요로 했던 산업시대의 제국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또한 미국은 민주주의 제국이라는 점에서 황제가 지배한 여타의 제국들과 달리 의회와 여론에 의해 대외정책이 많은 영향을 받는다.

미국 제국의 출현은 우리에게는 기회인 동시에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미국은 이미 더 이상 단순히 국가안보가 아니라 ‘제국안보’를 추구하고 있다.냉전 시기 미국의 봉쇄전략에 동참했던 것처럼 한국이 미국의 제국안보의 전략적 비전을 공유하고 추구한다면 지금의 상황은 우리의 국익 추구에 매우 유리하다.이라크파병,북핵 문제,해외주둔 미군재배치(GPR)와 주한미군 재조정,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등 모든 문제들이 제국안보와 밀접히 연관된 사안들이다.제국의 확실한 동맹국에만 외국 자본이 들어간다는 것은 대영제국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우리가 제국의 동맹국으로서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린다면 당연히 그 질서 유지를 위한 군사적,재정적 부담을 떠맡지 않으면 안 된다.무조건 무임승차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이러한 부담을 기꺼이 지는 것이 국익에 부합된다고 국민을 설득해야 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구한말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삶은 제국의 흥망성쇠(興亡盛衰)에 의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주변 4강 모두가 제국이었고 그들 중 일부는 조폭적 제국이었다.그 중에서도 민주적 미국 제국의 영향 하에서 한국은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번영을 이룩할 수 있었다.미국 중심의 제국적 질서가 우리의 국익에 부합한다면 우리는 제국안보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만약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미국 제국 질서 밖에서 국익을 추구할 수 있는 대안적 전략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그러나 역사적으로 제국은 질서와 풍요를 의미했고 제국 밖은 무질서와 빈곤을 겪었다는 사실을 노 대통령과 그의 전략가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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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성신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
2004-07-0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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