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김철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열린세상]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김철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 2004-04-15 00:00
수정 2004-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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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이 완연하다.이맘때,대학에서 지내는 큰 즐거움 중 하나가 교정을 향기로 채우며,봄차림 자랑하는 꽃나무를 감상하는 것이다.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연녹색의 나무들을 보며 생명의 신비로움에 감탄한다.봄의 정취를 사진기에 담아내는 학생들과 동네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긋한 행복감을 느낀다.

돌이켜보면,대학이 지역 주민들에게 못할 짓 참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든다.물론 이것은 대학의 책임이라기보다 독재라는 정치적 조건 때문이었다.특히 1980년 ‘서울의 봄’에서 시작해서 87년 민주화 항쟁의 기간 동안 수시로 벌어지던 대규모 집회와 최루탄 진압,그리고 악명 높았던 소위 ‘지랄탄’ 등으로 대학가 주민들은 학생들과 더불어 쓴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한 자료에 따르면 87년 한 해 동안에만 경찰이 쏜 최루탄이 72만 4000발에 달했다니,대학 주변에서 산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 것인가.화염병,돌멩이,최루탄 탓에 집값이 떨어진다던 하소연이 기억에 생생하다.콧물,눈물 질질 흘리던 분식집 여린 꼬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때 진 마음의 빚 때문일까.이제 대학이 인근 주민들과 지역사회를 위해 많은 것을 돌려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최근 몇몇 대학들이 캠퍼스의 담장을 없애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이는 좋은 출발이다.외국의 대학들을 보면 대부분 대학과 지역사회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그야말로 ‘캠퍼스 타운’인 것이다.서울과 같은 거대도시에서도 보다 적극적인 발상을 한다면,지역사회를 위해 대학이 할 수 있는 일이 여러 가지 있다.

첫째,대학은 지역의 문화 센터 역할을 할 수 있다.상당수의 대학들이 문화적 여건이 열악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주변에 변변한 문화시설이나 극장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따라서 이런 문화적 결핍을 대학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대학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전시회나 문화 공연이 열리고,학생들을 대상으로 좋은 영화를 상영하기도 한다.많은 예산을 들여서 하는 이런 행사들이 교내 구성원들만의 잔치여서는 곤란하다.보다 적극적으로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대학은 지역주민들을 위한 ‘공적’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대학 도서관 같은 시설을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하고,주민등록증으로 도서대출도 가능하게 하자.‘관리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니다.그러나 힘들더라도 사회교육이라는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도 대학의 중요한 임무이다.또한 가정형편이 어려운 인근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 불평등 문제 해결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이런 일들이 지식을 사회적으로 유용한 것으로 만들고,대학의 지식 전파 기능을 완수하는 길이다.

셋째,대학은 지역주민들을 위한 공원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잿빛 콘크리트의 도시에서 대학은 그나마 얼마간의 녹지를 보유하고 있다.도시 공기의 심각한 오염 속에서 대학은 작은 숲의 역할을 할 수 있다.노동에 지치고,일상에 피곤하고,속도에 넋이 빠진 사람들이 찾아와 차 한 잔 마시고,앉아서 쉬고 갈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대학은 보다 적극적으로 나무를 심어야 한다.콘크리트와 시멘트는 죽음이다.콘크리트와 시멘트를 들어내고 나무를 심고,숲을 가꾸자.이를 통해 생명을 살리고,지친 현대인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다.그런 의미에서 학교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건물을 짓는 일은 신중히 재검토되어야 한다.

끝으로 대학은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와는 다른 철학을 잉태하는 곳이어야 한다.‘경쟁’과 ‘시장 원리’가 온통 난리를 치며 사회를 획일화시킬 때에도,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속으로 갈급해하는 다른 소리를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느림’,‘삶의 의미’,‘생명’,‘배려’와 같은,비효율적이지만 대단히 중요한 가치의 의미를 외치는 것이 정말로 큰 대(大)자 ‘대학’이 사회를 위해 제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김철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2004-04-15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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