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민생투어/우득정 논설위원

[씨줄날줄] 민생투어/우득정 논설위원

입력 2004-04-01 00:00
수정 2004-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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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의 한 고위 인사는 한국의 금융업이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첫번째 원인으로 금융기관간 상품 베끼기 경쟁을 지목했다.돈만 된다 싶으면 너도나도 따라하는 바람에 금융기관들이 내놓은 상품이나 수익률 구조,부채 상황까지도 유사하다는 것이다.

정치권이라고 다를 바 없다.이 땅에서 정당의 대표가 되거나 대통령 선거 후보가 되면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국립현충원과 4·19 또는 5·18 묘역을 참배한 뒤 제조업체를 찾아 근로자들과 식사를 하며 사진을 찍는다.새벽에는 남대문시장 등 재래시장을 돌고 출근길은 택시를 이용한다.이른바 ‘민생투어’다.평상시 천상에서 살다가 낮은 곳으로 임하는 것이 대단한 이벤트라도 되는 양 정당 대변인들은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선전한다.

정치 지도자들은 서민들의 애환을 몰라 민생투어에 나서는 것일까.맞을 수도 있고,틀릴 수도 있다고 본다.서울 여의도 의사당에서 민의와 동떨어진 정쟁에 골몰하는 것을 보면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그래도 아쉬울 때면 유권자들에게 손을 내밀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보면 민심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 같기도 하다.그래서 요즘 총선 정국을 맞아 각 당 대표들이 ‘복사기’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서로의 일정표를 베끼기하는 경쟁을 벌이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금융기관들이 천문학적인 규모의 공적자금을 수혈받고서도 베끼기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듯이 표심을 겨냥한 정치권의 상상력이 천편일률적인 민생투어의 범주에만 맴돌고 있다면 불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상상력이 빈곤한 지도자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결과물이란 너무도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체육관’에서 최고 권력이 탄생하던 시절이나 호텔과 음식점,광장에 ‘동원된’ 민심을 통해 여론이 전달되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민생투어는 진일보했다고 할 수 있겠다.출근길 택시기사에게서 혼쭐이 난 정당 대표가 새삼 민심을 알게 됐다는 듯이 너스레를 떠는 것을 보면 말이다.

백성들이 바라는 것은 극히 단순하다.민생투어를 통해 확인한 민심을 의정활동에 제대로 반영해 달라는 것이다.지금처럼 때가 되면 의례적인 일정표에 따라 왔다가는 민생투어는 ‘점퍼투어’일 뿐이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
2004-04-01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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