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지구상에는 30여 군데에 이르는 지역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그중 몇몇 나라의 전쟁은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지만,나머지는 잊혀지고 있다.그렇다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않는 지역 상황이 덜 처참한 것은 결코 아니다.그런가 하면,이른바 ‘평화롭게’ 살고 있다는 국가에서도 폭력과 증오,다툼이 발견된다.
이 세상의 모든 나라와 모든 사람들은 평화와 화합,일치를 애타게 갈망하고 있다.평화를 위하여 노력하는 좋은 뜻을 가진 이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 안에서 한결같고 견고한 평화를 얻지 못하였다.그렇다면 모두가 어울려 서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어떻게 하면 이러한 평화를 건설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하고 자문하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남북이 갈라져 있고,북한의 핵 문제는 동남아의 평화를 위협하며 세계적인 문제가 되어 있다.남한 안에서도 계층,지연,학연,혈연,및 세대간에 많은 갈등이 있음을 보고 있다.갈등과 투쟁이 극에 달한 정치를 보노라면 속이 이만저만 상하는 것이 아니다.우리 사회가 평화롭지 못하고,서로간의 관계가 평화로운 관계가 아니므로 평화에 대하여 많은 말을 하고 있다.평화에 대한 간절한 소망의 표현이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성서에서 말하는 “샬롬”은 개인적인 사람들 사이의 조화,법의 질서에서 보장받은 평온함을 뜻한다.우리 조상들이 소망하던 부귀다남,건강장수 등의 복락에서 오는 안녕과도 통함을 볼 수 있다.죽은 이들 앞에서 “평안함에 쉬어 지이다.”라고 말하면서 명복을 빌고,“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로 몸의 건강과 마음의 평온을 축원한다.요즈음 많은 이들이 “건강이 최고”라는 말을 듣고,몸에 좋다면 무엇이든지 다 먹는 모습을 보노라면,건강이 중요한 것은 틀림없지만 참된 의미의 평화를 생각하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 자신이 평화의 건설자가 되기 위하여 강한 사랑이 요구된다.나의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하며,용서할 수 있어야 하고,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의 조국이나 도시를 나 자신의 조국과 도시처럼 사랑해야 한다.매일 내가 만나는 이웃들에게 봉사하면서 그들의 이익을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될 것을 요청한다.이 사랑은 또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그리고 그들을 보편적 형제애의 대상자로 바라보기 위해,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눈을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평화는 바로 지금 여기서,나와 이웃과 맺는 모든 관계로부터 시작된다.우리가 전쟁의 위험을 없애려면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공격적인 성향,착취 및 이기심을 우리 안에서 뽑아버려야 한다.
평화는 불꽃처럼 옆으로 퍼져 나가는 특징을 기지고 있다.우리도 평화로운 삶을 통하여 만나는 이웃들에게 평화를 전해 주는 참 평화의 건설자,평화의 전달자가 될 수 있다.평화의 전달자가 될 때에 우리는 진정한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최근에 로마에서 주교들의 피정(避靜)에 참여하고 돌아왔다.전세계의 43개국에서 모여든 100명이 넘는 주교들과 늘 이웃을 내 몸처럼,이웃 나라를 내 나라처럼 사랑하고,나의 한 어깨에는 내가 책임진 교구를 다른 어깨에는 다른 나라의 교구를 짊어지고 사랑하고 기도하겠다는 “사랑의 서약”을 하였다.내가 매일 드리는 기도 안에는 내 나라,내 교회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도 이웃 교회도 자리잡고 있고,세계 평화를 위하여,특별히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하여 나의 삶을 바쳐 드리고 있다.
유흥식 주교·천주교 대전교구 부교구장˝
이 세상의 모든 나라와 모든 사람들은 평화와 화합,일치를 애타게 갈망하고 있다.평화를 위하여 노력하는 좋은 뜻을 가진 이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 안에서 한결같고 견고한 평화를 얻지 못하였다.그렇다면 모두가 어울려 서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어떻게 하면 이러한 평화를 건설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하고 자문하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남북이 갈라져 있고,북한의 핵 문제는 동남아의 평화를 위협하며 세계적인 문제가 되어 있다.남한 안에서도 계층,지연,학연,혈연,및 세대간에 많은 갈등이 있음을 보고 있다.갈등과 투쟁이 극에 달한 정치를 보노라면 속이 이만저만 상하는 것이 아니다.우리 사회가 평화롭지 못하고,서로간의 관계가 평화로운 관계가 아니므로 평화에 대하여 많은 말을 하고 있다.평화에 대한 간절한 소망의 표현이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성서에서 말하는 “샬롬”은 개인적인 사람들 사이의 조화,법의 질서에서 보장받은 평온함을 뜻한다.우리 조상들이 소망하던 부귀다남,건강장수 등의 복락에서 오는 안녕과도 통함을 볼 수 있다.죽은 이들 앞에서 “평안함에 쉬어 지이다.”라고 말하면서 명복을 빌고,“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로 몸의 건강과 마음의 평온을 축원한다.요즈음 많은 이들이 “건강이 최고”라는 말을 듣고,몸에 좋다면 무엇이든지 다 먹는 모습을 보노라면,건강이 중요한 것은 틀림없지만 참된 의미의 평화를 생각하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 자신이 평화의 건설자가 되기 위하여 강한 사랑이 요구된다.나의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하며,용서할 수 있어야 하고,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의 조국이나 도시를 나 자신의 조국과 도시처럼 사랑해야 한다.매일 내가 만나는 이웃들에게 봉사하면서 그들의 이익을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될 것을 요청한다.이 사랑은 또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그리고 그들을 보편적 형제애의 대상자로 바라보기 위해,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눈을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평화는 바로 지금 여기서,나와 이웃과 맺는 모든 관계로부터 시작된다.우리가 전쟁의 위험을 없애려면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공격적인 성향,착취 및 이기심을 우리 안에서 뽑아버려야 한다.
평화는 불꽃처럼 옆으로 퍼져 나가는 특징을 기지고 있다.우리도 평화로운 삶을 통하여 만나는 이웃들에게 평화를 전해 주는 참 평화의 건설자,평화의 전달자가 될 수 있다.평화의 전달자가 될 때에 우리는 진정한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최근에 로마에서 주교들의 피정(避靜)에 참여하고 돌아왔다.전세계의 43개국에서 모여든 100명이 넘는 주교들과 늘 이웃을 내 몸처럼,이웃 나라를 내 나라처럼 사랑하고,나의 한 어깨에는 내가 책임진 교구를 다른 어깨에는 다른 나라의 교구를 짊어지고 사랑하고 기도하겠다는 “사랑의 서약”을 하였다.내가 매일 드리는 기도 안에는 내 나라,내 교회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도 이웃 교회도 자리잡고 있고,세계 평화를 위하여,특별히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하여 나의 삶을 바쳐 드리고 있다.
유흥식 주교·천주교 대전교구 부교구장˝
2004-03-06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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