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노인에 20만원’ 지키려면 임기내 57조 필요…세수는 줄고 증세는 난망
‘모든 노인에게 20만원 지급’, ‘4대 중증질환 보장’ 등 현 정권 창출에 크게 기여한 박근혜 대통령의 야심찬 대선 복지공약들이 취임 6개월여만에 공약 후퇴 논란과 함께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65세이상 노인에게 주는 기초연금은 당초 약속과 달리 고소득층을 제외한 70%에만 10만~20만원씩 차등 지급될 예정이고, 이미 발표된 4대 중증질환 대책 등도 국민의 기대에 흡족한 수준이 아니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6일 내년도 예산안을 심의·의결하는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직접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지만 ‘공약 후퇴’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 기초연금·4대중증질환·반값 등록금 등 “당초 공약과 다르거나 불투명” 논란
최근 연일 이어지는 공약 후퇴·축소 공방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기초연금’이다.
이는 노인층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65세 이상 노인에게 달마다 일정 수준의 현금을 주는 제도로, 당초 공약 내용은 “기초연금 도입 즉시 65세 이상 모든 어른신과 증증장애인에게 현재의 2배(약 20만원) 수준으로 지급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5일 드러난 정부의 기초연금안을 보면 지급 대상은 소득 하위 70%로 축소되고, 이들에게도 20만원을 모두 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해 10만원에서부터 20만원까지 차등 지급될 예정이다.
당장 양대 노총과 시민단체들은 “공약 파기”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앞서 지난 6월 정부가 발표한 4대 중증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 난치) 보장 확대 방안 역시 “공약과 다르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상당수 국민은 대선 과정에서 관련 공약을 “4대 중증질환 진료비를 모두 국가가 책임진다”고 해석했지만, 정부안은 이 공약과 큰 거리가 있는게 사실이다.
4대 중증질환 치료에 꼭 필요한 처치와 약제 등에 대해 2016년까지 모두 건강보험을 적용, 진료비의 5~10%만 환자가 부담하도록 바꾸겠다는게 정부 방안의 핵심. 그러나 정작 중증질환 진료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3대 비급여(상급병실료·선택진료비·간병비)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정부안의 이행 계획조차 2017년까지 단계적으로 짜여있어 수년내에 4대 중증질환자들이 얼마나 큰 혜택을 기대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태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민주노총 등은 “정부안의 초점은 4대 중증질환의 비급여 항목 가운데 환자부담이 크지 않은 항목들에 맞춰져 있다”며 “의료비 부담의 본질인 3대 비급여(상급병실료·선택진료비·간병비) 문제를 회피한 것은 보장성 개선과 무관한 꼼수”라고 지적하고 있다.
대학생과 부모들의 등록금 부담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반값 등록금’ 공약도 불안하다.
교육부는 당초 국가장학금으로 4조원, 대학 장학금과 등록금 인하 등으로 3조원 등 모두 7조원을 마련, 대학 등록금 수입액 14조원(2011년 기준)의 절반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당장 내년부터 충분한 수준의 예산 확보가 가능할지는 미지수이다.
◇ 52개 주요복지 공약에 임기내 정부 예산만 79조 필요
정부가 이처럼 박 대통령의 여러 복지공약을 밀어붙이지 못하는 핵심 이유는 결국 돈 때문이다.
새 정부의 핵심 복지 공약들만 추려도 오는 2017년까지 남은 임기에 수 조~수 십조원에 이르는 예산을 쏟아부어야만 실현 가능한 정책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공약을 실행하고 싶어도 현재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으로는 관련 재원을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이다.
대표적 사례로 기초연금만 따져도 정부의 곤궁한 처지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보건복지부 추산에 따르면, 내년 7월부터 공약대로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 정액을 지급할 경우 2017년까지 무려 57조원이 필요하다. 대상을 80%로 한정해 20만원을 지급해도 소요 재원은 약 48조원에 이른다.
더구나 임기내 예산만 문제가 아니라, 고령화 진행과 더불어 노인 수가 늘어나면 관련 소요 예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결국 고심끝에 40조원의 재원 계획을 바탕으로 지급 대상을 70%로 제한하고,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1년 더 길수록 연금액을 약 1만원씩 깎아 지급하는 방안을 ‘해법’으로 내놨다.
’부족하다’고 공격받는 정부의 4대중증질환 대책조차 실행하는데 10조원에 가까운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물가·수가 인상률 이상 건강보험료를 더 걷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올해부터 2017년까지 무려 8조9천900억원의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
이미 기본 틀이 잡혀 올해부터 시행되는 박근혜식 무상보육 정책에도 계속 큰 돈이 들어간다. 올해부터 2017년까지 만0~5세 아이를 둔 모든 가정에 보육료와 양육수당 중 적어도 하나를 지원하는데 추가로 투입되는 복지부 예산은 5조3천억원 정도다.
이밖에 새아기 장려금(2조1천억원), 기초생활보장제도 급여체계 개편 및 사각지대 해소(6조3천억원), 장애인 연금 기초급여 2배 확대(3조9천억원) 등도 충분한 예산 뒷받침이 필수적인 복지 사업들이다.
정부의 ‘공약가계부’에 따르면, 52개 주요 복지 공약을 지키려면 임기 동안 필요한 중앙정부 예산만 무려 79조원에 이른다.
◇ 올해 세수 부족분만 7조~8조원…우회적 증세 시도도 ‘좌절’
이처럼 돈 쓸 곳은 넘쳐나는데 천문학적 규모의 재원을 마련할 방법은 막막한 게 현실이다.
당초 정부는 복지 공약을 포함한 140개 국정과제 실행 예산 135조원 가운데 18조원은 비과세·감면 대상 조정으로, 27조원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84조원은 세금 씀씀이를 줄여 확보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경기 침체 등으로 이미 올해부터 큰 폭의 세수 부족이 예견되면서 정부의 복지 재원 계획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올해 연간 추가경정예산 대비로 7조~8조원 정도의 세수감소를 예상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증세 등 특단의 조처가 없는 한, 내년 이후로도 복지 재원 상황은 좋아지기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세법개정안이 ‘사실상 증세’에 반발하는 여론에 밀려 수정됨에 따라 충분한 수준의 복지 예산 확보 가능성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애초 근로소득 연 3천450만원이었던 세 부담 증가 기준선이 수정안에서 5천500만원으로 높아지자 원래 기대했던 것보다 세수 규모(추산)가 연 4천400억원,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동안 1조3천200억원 정도 줄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 뿐 아니라 복지 전달의 또 다른 한 축인 지방자치단체의 재원 여건도 걱정거리다. 이미 실례로서 무상보육 정책이 지자체의 재원 부족으로 최근 ‘전면 중단’ 위기를 맞았다.
올해부터 임기 안에 만0~5세 아이를 둔 모든 가정에 보육료와 양육수당 중 적어도 하나를 지원하는데 추가로 투입되는 복지부 예산만 5조3천억원에 이른다. 지방자치단체들 역시 매칭(분담) 원칙에 따라 비슷한 규모의 재원을 확보해야하지만, 상당수 지자체가 관련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가 복지를 핵심 화두로 내 건 이상, 재원 마련에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병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은 “비과세·감면 항목 정비, 지하경제 양성화, 종교인 과세뿐 아니라 부가가치세 세율 및 담배·주류부담금 인상도 재원 방안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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