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사. 박미경(47) 마제스티클럽(PB센터 본점)부장의 사무실에서 전화 벨이 끊이지 않고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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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경 한국투자증권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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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경 한국투자증권 상무
“어머… 고맙습니다. 도와주신 덕분입니다.…”박 부장은 이날자로 상무보를 건너뛰고 상무로 고속 승진, 축하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녀는 ‘증권가 첫 여성 임원’이라는 신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다.‘여성 1호’는 지난 29년 직장생활에서 승진할 때마다 늘 붙었던 타이틀이자 훈장이다.
●늘 따라다닌 ‘여성 1호’
박미경 상무는 프라이빗뱅크(PB) 영업본부의 총 책임자가 됐다. 여성 상무가 일반 기업이나 은행, 보험사 등에선 그렇게 생소하지 않지만 남성중심적 문화가 강한 증권가에선 신선한 충격이다. 더욱이 말 한마디에 따라 ‘큰 손’들의 수십억원이 오갈 수 있는 영업 분야에선 나중에도 흔히 보기 어려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회사측은 발탁 이유에 대해 “마포지점장, 여의도 PB센터장, 마제스티클럽 부장 등을 거치며 뛰어난 영업력을 발휘했고, 섬세한 관리력이 돋보였기 때문에 우수고객의 자산관리를 책임지는 PB영업에 최적임자”라고 평가했다.
박 상무는 지난 2000년 서울 마포지점장 발령을 받은 뒤 영업 실적을 순식간에 3배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여의도 PB센터장 시절에는 그녀의 센터가 매분기마다 전국 최우수 점포로 선정됐다. 자그마한 키와 갸냘픈 몸매, 다소곳한 말씨의 그녀에게서 어떻게 그런 ‘위력’이 뿜어져 나오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남자되는 고시’와 신문 읽기
박 상무는 ‘똑똑한 여학생만 뽑았다.’는 서울여상을 거쳐 ‘최고 보수의 직장’이라는 투신사에 고졸 여사원으로 입사했다. 하지만 아무리 엘리트 회사의 똑똑한 여직원이라도 ‘결혼=퇴직’으로 이어지던 시절이다.
1980년대 중반 여직원에 대한 편견이 서서히 바뀌면서 그녀에게 이른바 ‘전직(轉職)고시’의 기회가 왔다. 전직고시란 여자 사원이 남자 직원 자격으로 전환될 수 있는 승진 시험으로, 당시 여직원들 사이에선 ‘신분 상승을 향한 고시’로 통했다고 한다.200여명이 응시해 2명을 뽑았는데 그녀가 합격했다. 여성 최초의 대리 승진과 함께 배치받은 곳은 홍보실.
영업 등 핵심 부서가 아니어서 이른바 ‘유리벽’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지만 그녀에겐 두번째 기회가 되었다. 유리벽은 ‘동등한 기회가 열려 있다고 하지만 막상 중심부에는 편견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이르는 말로 승진에서의 남녀차별을 뜻하는 ‘유리천장’과 구분된다.
10년 동안 홍보업무를 맡으면서 신문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홍보 업무는 그녀에게 3가지 강점을 길러주었다. 먼저 그녀는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과 내용을 효과적이며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법을 터득했다. 또 홍보를 위해선 회사 금융상품의 특징을 정확히 알아야 했고, 경쟁사 상품도 꿰뚫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회사를 설명하면서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길러졌다.
●여성의 섬세함으로 ‘맞춤형 영업´
박 상무는 “기왕 하는 일이면 제대로 하자는 생각에 모든 일을 꼼꼼하게 했을 뿐”이라며 “여성이면서, 처음이라는 희소가치도 영업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면서 겸손해했다. 그녀는 “남성들의 변화무쌍한 인맥 문화에 휩쓸리지 않고, 술이나 골프 등 힘겨운 남성문화는 깨끗이 포기했다.”면서 “여성의 섬세함을 살려 고객에게 맞는 것을 찾으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박 상무는 여성 후배들에게 “성형수술이나 명품 쇼핑은 잊어버리고 신문읽기 등으로 자신에게 투자하라.”고 충고한다. 그녀는 “진짜 부자는 허튼 생각을 하지 않고 절약이 온몸에 배어 있었다.”고 PB영업의 경험을 전하면서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잡는 사람이 성공하는데, 기회를 제때 잡으려면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직장 여성들은 종종 자신의 나이를 잊고 사는데, 축구선수 안정환씨의 어머니가 나보다 불과 한살 위라는 사실을 스포츠신문에서 읽고 ‘허걱’(인터넷상의 표현) 했다.”면서 웃었다. 그녀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박 상무가 오늘도 나이를 잊고 유리천장을 부수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믿는다.
▲1959년 서울 출생▲서울여상, 덕성여대 회계학과 졸업▲1977년 한국투자신탁 입사▲1988년 증권업계 최초 여성 사원의 대리 승진▲2000년 첫 여성 지점장▲2002년 첫 여성 홍보실장▲2004년 첫 여성 PB센터장▲2005년 마제스티클럽 부장▲2006년 4월 PB영업본부 상무
2006-04-08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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