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배의 판판한 시장경제] 거대 플랫폼 규제, 효율과 공정

[김형배의 판판한 시장경제] 거대 플랫폼 규제, 효율과 공정

입력 2024-04-29 03:22
수정 2024-04-29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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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플랫폼을 규제하기 위한 입법 시도가 두 번이나 좌초될 판이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추진한 ‘플랫폼 공정 경쟁촉진법(안)’이 이해관계자의 거센 반발로 햇빛을 보지도 못했다. 거대 플랫폼의 시장지배력 남용 행위를 규제해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 법안의 주요 골자다. 지난 정부에서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안)’이 국회에 제출됐으나 21대 국회 회기 종료를 앞두고 폐기 기로에 서 있다. 이 법안은 납품업체나 거래업체에 대한 거대 플랫폼의 갑질을 예방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떤 형태로든 22대 국회에서는 거대 플랫폼을 규제하고자 하는 법안이 다시 시도될 게 거의 확실하다.

거대 플랫폼에 대한 규제 논의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유럽연합(EU)에서는 애플·구글·메타와 같은 거대 플랫폼의 남용 행위를 규제하는 디지털시장법(DMA)이 3월부터 시행 중이다. 일본 경쟁당국은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과점하는 애플과 구글을 겨냥해 ‘스마트폰 경쟁촉진법(안)’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경쟁당국도 글로벌 빅테크의 남용 행위 규제에 초점을 맞춘 맞춤형 경쟁법 제정 필요성을 밝힌 바 있다. 미국에서도 2021년 거대 플랫폼을 규제하기 위한 패키지 법안이 의회에 제출됐다가 회기 종료로 폐기된 뒤 지난해 ‘온라인 시장 선택과 혁신을 위한 법안’이 다시 발의됐다.

위에서 보듯이 우리나라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거대 플랫폼의 경쟁제한행위를 규제하는 데 관련 법안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거대 플랫폼의 힘에 의해 시장이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남용 행위에 대해서만 규제하겠다는 취지다. 시장경제의 효율적인 작동을 통해 경쟁 과정 자체를 보호하면서 반사적으로 거대 플랫폼의 경쟁 사업자를 보호하는 한편 그 혜택이 최종 이용자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시장경제의 효율적 작동이라는 효율성과 납품업체 또는 거래업체의 보호라는 공정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전 정부 법(안)에는 ‘공정화’가, 이번 정부 법(안)에는 ‘공정 경쟁 촉진’이라는 용어가 들어가 있지 않은가.

자원이 최적으로 활용돼 사회적 후생이 극대화되는 것을 배분적 효율성이라고 한다. 가격이 저렴할수록, 품질이 좋을수록, 혁신이 활발할수록 배분적 효율성은 커진다. 배분적 효율성이 달성되더라도 공정성이 훼손될 수 있고 반대로 공정성이 달성되더라도 배분적 효율성이 훼손될 수 있다.

미국 반독점법 가운데 1936년에 제정된 로빈슨패트먼법은 구매자에 대한 가격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한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격을 낮추어야 하나 법 위반이 두려워 가격 인하를 주저하게 된다. 경쟁이 치열한 지역에서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는 여타 지역에서도 똑같이 가격을 인하해야 하므로 오히려 손해이기 때문이다. 이 법으로 인해 가격 인하 유인이 사라져 모두가 손해를 보는 상황이 초래됐다. 구매자 차별 금지라는 공정성을 추구하기 위해 가격경쟁이라는 효율성이 훼손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 법은 1970년대 이후로 사문화됐다.

효율성과 공정성은 대부분은 조화롭지만 상충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법을 만들거나 집행할 때 두 가치가 충돌하게 되면 어떤 걸 우선해야 하는가. 거대 플랫폼 규제에서 공정성을 위해 효율성을 훼손한다면 자칫 둘 다 잃을 수도 있다.

김형배 더 킴 로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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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배 더 킴 로펌 고문
김형배 더 킴 로펌 고문
2024-04-29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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