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정의 독사만평] 중국의 한국 인식과 영토 의식/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정재정의 독사만평] 중국의 한국 인식과 영토 의식/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입력 2022-08-03 20:28
수정 2022-08-04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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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치욕 보여주는 지도’ 내걸고
학교교육서 영토 수복 의분 고취
전쟁으로 국경 변경 가능한 현실
尹 정부 역사관·안보관 다잡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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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정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정재정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017년 4월 6∼7일 플로리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시 주석이 회담 중에 장기간에 걸친 한중관계사를 설명하면서 북한과 한국이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음’을 밝혔다. 우리로서는 역사적 사실에도 전혀 맞지 않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오만한 발언이었지만, 정권교체기라서 그랬는지 논평조차 없이 넘어갔다.

시 주석은 자주 6·25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 보가위국(保家衛國)의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추켜세운다. 이에 맞춰 중국에서는 침략을 애국으로 미화한 6·25전쟁 영화·드라마가 전국을 휩쓸었다. 시 주석의 비뚤어진 중화주의 역사인식은 외교 현장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국빈 방문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홀대하고, 취재 중인 한국 기자를 폭행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게다가 사드 기지를 제공한 롯데그룹의 중국 내 영업을 방해하고, 중국인의 한국 여행과 한국문화 소비를 제한했다.

시 주석은 항상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부르짖는다. 그는 아편전쟁 이후 서양·일본에 영토·문화를 짓밟힌 역사를 굴욕이라 여기고, 중국공산당의 지도 아래 부강하고 찬란한 중화주의 국가·문명을 건설하겠다는 포부를 호기롭게 밝힌다. 그가 좇는 ‘중국몽’(中國夢)에서 한국은 그저 속국이거나 변방인 것처럼 보인다. 한미일 협력체제를 강화하려는 윤석열 정부를 압박하는 언동에서도 중화주의의 불편한 심기를 느낀다.

중국에 ‘중화국치지도’(中華國恥地圖)가 있다. ‘나라의 치욕을 보여 주는 지도’라는 자극적인 이름이 붙어 있는데, 중국이 열강의 반식민지로 전락한 시기에 학교교육에서 사용했다. ‘중화국치지도’의 국경선은 지금 중국의 거의 두 배나 되는 지역을 둘러싸고 있다. 동해 한복판을 지나 대한해협을 거쳐 오키나와·타이완·필리핀·남중국해·인도차이나반도 등을 중국 영토에 집어넣고 인도 북부지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앙아시아 대부분과 몽골·연해주·사할린·조선도 모두 중국 땅이다. 조선 옆에 1876년 독립, 1895년 일본 점령이라고 써 놓았다. 조일수호조약을 계기로 조선이 중국에서 벗어나고,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패함으로써 일본에 빼앗겼다는 뜻일 게다. ‘중화국치지도’를 배우면 의분에 차서 영토 수복을 꿈꾸게 된다.

중국은 1980년대까지 ‘중화국치지도’ 식의 역사관·영토관을 역사·지리 수업을 통해 가르쳤다. 1989년 6월 천안문광장 민주화운동을 진압한 이후에는 전국에 애국주의교육기지를 설치해 중화민족주의 교육을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나는 15년 전쯤 헤이허(黑河) 기지를 관람했는데, 전시가 아주 자극적이어서 제3자인데도 러시아에 빼앗긴 연해주를 수복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중화민족주의 교육을 100년이나 계속했으니 중국인의 역사·영토 의식이 얼마나 강렬할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중국은 무력을 써서라도 대만을 점령하겠다는 의지를 자주 표명하는데, 공연한 허풍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경 변경이나 영토 확장이 전쟁을 통해 가능하다는 무서운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성패를 예의 분석하며 러시아를 암묵적으로 성원한다. 게다가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역사관·영토관에는 비슷한 점이 많다. 미국 텍사스 공군기지의 정찰·정보 교육기관은 아시아에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영토전쟁에 대비한 훈련에서 ‘중화국치지도’를 참고자료로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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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리에게는 타산지석이다. 윤석열 정부는 유비무환의 자세로 역사관·안보관을 다잡아 국력 배양과 국민 통합에 진력하기 바란다. 정도를 걸으면 역사에 남는다.
2022-08-0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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