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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 대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분리수거를 하지 않던 시절 쓸 만한 쓰레기를 대신 수거해 주는 일꾼이 넝마주이였다. 넝마는 낡고 해어져서 입지 못하게 된 옷, 이불 따위를 이르는 말이다. 넝마주이는 등에 싸리나무나 대나무로 짠 커다란 망태기를 메고 쇠집게로 폐지나 빈병 등 고물을 주워 담아 팔며 살았다. 지금은 처치 곤란인 비닐은 귀한 대접을 받았다. 커다란 망태기를 ‘치룽’이라고 한다. 쓰레기 재활용에 큰 역할을 해온 넝마주이가 나쁜 인상을 남긴 것은 범죄에 쉽게 휩쓸린 밑바닥 인생이라는 관념 때문이었다. 실제로 넝마주이들은 여염집에 널린 빨래나 생선 등을 훔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전쟁으로 고아가 된 어린 넝마주이들은 이른바 ‘왕초’ 휘하에서 갈취를 당했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넝마주이를 ‘양아치’라 부르며 비하했다. 울던 아이도 ‘넝마주이가 온다’고 하면 울음을 그칠 정도로 무서운 존재였다.
넝마주이 자활정책은 그 뒤에도 이어졌지만, 범죄 연루는 끊이지 않았다. 넝마주이는 1980년 국보위가 사회악의 하나로 지목하면서 상당수 넝마주이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뒤로 사실상 사라졌다. 광주 민주화항쟁 때는 연고 없는 넝마주이가 다수 희생됐고 사망자 통계에도 빠졌다는 주장도 있다. 넝마주이가 엿장수와 함께 완전히 직업을 잃은 것은 1990년대 중반 쓰레기 종량제와 분리수거가 시행되면서다. 사라졌다지만 따지고 보면 넝마주이는 사라진 게 아니다. 생활고로 폐지를 모으는 노년 세대가 사실상 그 자리를 이어받은 현실은 더 씁쓸하다. 사진은 1961년 열린 넝마주이 결단식 모습(출처: 국가기록원).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2018-07-0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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