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사과우체통/김응교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사과우체통/김응교

입력 2018-04-13 17:56
수정 2018-04-14 01:02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사과우체통/김응교

부탁할 것 딱 하나 있소

주소 좀 빌려주실 수 있으시죠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

자식놈이나 아내한테, 만약

편지가 오면, 토요일에 갖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냉장고나 베란다, 볕 잘 드는 서재가 없더라도

개집이라도 좋으니

그저 우체통 달린 데서 사는 것

지금 내 삶의 목표입니다

우체통은 위대한 존재

아침마다 나는 우체통이기를 소망한다

어느 날 내 몸이 빠알간 사과우체통으로 환생하더라

풀숲이 풀벌레 감추듯

파탄 난 과거 품어주는 우체통이 되었더라

왕년의 비밀이든 신음 소리든

너그럽게 삼키며, 마침내

헤어졌던 부부가 입맞춤할 때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는,

빠알간 능금우체통 뺨이었더라

어른이 되면, 내 꿈은 단 하나, 우체통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딴 욕심은 없었다. ‘우체통 달린 데서 사는 것’이 삶의 목표라니. 나는 벼락 맞은 듯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사이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며 살았다. 그런데도 늘 부족하다고 불평하고, 불행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저 초심에서 멀어진 탓이다. 소박함을 잃은 탓이다. 지금도 ‘사과우체통’으로 환생하기를 꿈꾸는 이가 단 하나라도 있다면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것이다.

장석주 시인
2018-04-14 2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유튜브 구독료 얼마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나요?
구글이 유튜브 동영상만 광고 없이 볼 수 있는 ‘프리미엄 라이트'요금제를 이르면 연내 한국에 출시한다. 기존 동영상과 뮤직을 결합한 프리미엄 상품은 1만 4900원이었지만 동영상 단독 라이트 상품은 8500원(안드로이드 기준)과 1만 900원(iOS 기준)에 출시하기로 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적절한 유튜브 구독료는 어느 정도인가요?
1. 5000원 이하
2. 5000원 - 1만원
3. 1만원 - 2만원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