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동물 키워볼까” 고독탈출 대안찾기
우울증을 앓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우울증은 고독감과도 연결된다. 홀로 생활하는 노인들은 외로움에 빠지고 우울증을 앓게 된다. 급기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노인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자살하는 노인 대부분은 독거노인이다. 독거노인 수는 현재 100만명을 넘보는 수준이다. 독거노인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문제에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됐다. 또한 노인들도 스스로 고독에서 벗어나려는 나름의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집에 돌아오면 반겨주는 건 강아지뿐”
김정진(59)씨는 26년간의 직업군인 생활을 청산하고 얼마 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다. 해병대 출신인 그는 제대를 했지만 ‘영원한 군인’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집안을 호령하던 김씨였지만 나이가 들고 은퇴하자 분위기가 예전 같지가 않았다. 상명하복에 익숙하고 집에서도 군대식으로 행동해서 다정다감한 남편이나 아버지를 원하는 부인이나 자식들과의 사이가 원활하지 못하다. 그는 “아내가 계절마다 친구들과 꽃구경을 다니는데 함께 다니자고 말하기는 부끄러웠다.”면서 “자식들도 일 바쁘다는 핑계로 바깥으로 돌아 얼굴 한 번 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어쩌다 가족들 모두 집에 있는 날에도 혼자 거실에서 우두커니 텔레비전을 보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그는 외톨이 아닌 외톨이가 됐다.
이런 김씨에게 가장 소중한 건 강아지 ‘똘이’다. 2년 전에 아들이 키워보겠다고 데려온 ‘테리어’와 ‘몰티즈’ 잡종이다. 그러나 아들이 잘 돌보지 않으면서 애물단지가 된 똘이가 자신의 신세처럼 느껴져 애처로웠다. 한두 번 밥을 챙겨주자 김씨를 따르는 강아지에게 정이 붙었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노인들에게 애완동물은 가족의 역할을 대신하는 반려자인가 하면 일상의 고락을 나누는 가족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소통의 문제만 없다면 애완의 대상은 개나 고양이·앵무새일 수도 있고 로봇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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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면 그를 반겨주는 건 똘이뿐이다. 요즘 김씨는 직장만 빼고 어딜 가든 똘이와 함께다. 잘 때도 침대에서 같이 자고, 영양식을 매일 사다 나른다. 쥐포를 좋아하는 똘이를 위해 가락시장까지 가서 고급 쥐포를 사오기도 했다. 김씨는 “똘이는 내 친구이자 자식과 같다.”며 “군말 한마디 없이 애교 떨어주는 똘이가 없으면 정말 우울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지배배 잉꼬부부, 손자 키우는 것 같죠”
경기도 부천에 사는 이혜숙(64·여)씨는 혼자 꽃집을 운영하며 두 남매를 키웠다. 남편은 20년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재혼할 기회도 몇 번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딸은 이씨를 이해했지만 아들이 끝까지 반대했기 때문이다. 반대하던 아들도 제 갈 길 찾아 결혼하고 나니 남과 다름 없었다. 이씨는 “가끔 아들이 원망스러웠지만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요즘 이씨의 유일한 즐거움은 ‘잉꼬’ 한 쌍을 키우는 것이다. 시집간 딸이 엄마가 외로울 것이라며 새해 선물로 가져왔다. 처음엔 “냄새나게 뭐하러 키우느냐.”며 다시 가져가라고 말했지만 혼자 적적한 집에서 새소리를 듣는 게 나쁠 것 없다고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잉꼬 두 마리가 지지배배 거리는 모양을 보면 남편 생각도 나지만 손자를 키우는 것처럼 애착이 간다. 그는 “얼굴도 못 보는 자식보다 훨씬 낫다.”고 말했다.
●“조리사 자격증 땄더니 남편이 달라졌어요”
경남 창원에 사는 최정자(55·여)씨는 평생 자식들만 바라보고 살았다. 바깥 일이라고는 모르고 음식, 청소, 빨래 등 살림만 한 주부다. 다정하던 두 아들, 무뚝뚝한 공무원이었던 남편까지 넘치는 것은 아니어도 부족한 것 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행복했던 최씨의 삶은 두 아들이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부터 바뀌었다. 딸만큼 살갑게 굴던 아들의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최씨는 “당시 폐경기까지 겹쳐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면서 “그때는 너무 외로워서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흐르곤 했다.”고 말했다.
매일 집에만 있던 최씨는 이웃의 권유로 동네 아줌마들과 뭔가를 배워보기로 결심했다. 요리에 자신이 있던 최씨는 처음에는 양식조리사자격증에 도전했다. ‘자격증 따는 게 그리 쉬운 줄 아느냐.’고 핀잔주던 남편이 얄미워 이를 악물고 공부해서 따냈다. 수지침을 배워서는 집안에서 ‘의사’ 노릇을 했다. 그러자 최씨를 은근히 무시하던 남편의 태도도 조금씩 변했다. 재봉틀 일을 배워 옷도 만들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살림왕’ 최씨에게는 쉽기만 했다. 최근에는 컴퓨터 사용법을 배워서 ‘인터넷 고스톱 게임’도 한다. 그는 “바쁘게 사니까 외로움이란 말을 잊었다.”면서 “자신을 위해 배우고,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 이렇게 뿌듯한 줄 몰랐다.”고 말했다.
●“온가족 힘모아 식당 운영… 대화도 술술~”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사는 김수정(56·여)씨는 보험설계사로 평생을 살았다. 뛰어나게 영업을 잘한 것은 아니어도 애들 학원비를 내거나 반찬값 정도는 벌었다. 동네에서 조그마한 보습학원을 운영하는 남편에게도 큰 도움이 됐다. 1년 전 남편 학원이 문을 닫자 김씨는 졸지에 ‘가장’이 됐다. 보험설계사로 버는 돈으로는 턱도 없었다. 대학생인 막내는 휴학을 해야 했다. 주말에 예식장 식당 도우미 아르바이트를 나가는 등 동분서주했다. 일이 없는 남편과 학교를 못 간 딸은 집에서 겉돌았다. 그는 “낭떠러지로 내몰린 기분이었다. 외로워서 많이 울었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외로움을 이겨냈다. 가족들이 합심해서 해물요리 식당을 차린 것. 이대로 있을 순 없다는 생각에 적금을 깨고 대출을 받았다. 쀼루퉁하던 딸도 함께 가게를 보러 다니는 등 열심히 도왔다. 남편은 계산대를 맡았다. 일은 고되도 가족들 사이에 대화가 늘어났다. 김씨는 “바쁘게 살다 보니 고독감도 저절로 사라졌다.”면서 “고독감을 해소하는 방법을 멀리서 찾지 말고 우리 주변에서 찾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정현용 이민영기자 junghy77@seoul.co.kr
■ 고독한 노인 줄이는 방법은
전문가들은 현대 사회의 노인 고독이 가부장적인 가족관계의 붕괴와 노인의 사회적 지위 하락에 따라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풀이한다.
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한형수 교수는 “가부장제가 우세했던 농경사회에서는 노인을 어른으로 모시는 전통이 있어서 별로 외롭지 않았다.”면서 “현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혈족간 유대관계가 약해지고 노인들의 사회적 지위가 하락해 고독감을 느끼는 노인이 크게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노인 고독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생활 속의 ‘노인 커뮤니티’를 제안했다. 그는 “지금은 경로당에서도 목소리 큰 노인만 발언 주도권을 갖는 등 커뮤니티라고 볼 수 없을 만큼 단순한 만남에 그치고 있다.”면서 “개인의 의사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도와 커뮤니티를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인의 성 문제를 사회적인 통념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노인들끼리 숨어서 만나는 이른바 ‘노인콜라텍’ 같은 음지를 양지로 전환해 노인간 교류도 긍정적 사회현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애완동물의 긍정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교수는 “애완동물도 노인 고독 치료 프로그램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대화’를 할 수 없어 다소 한계가 있다.”면서 “반드시 최종적인 부분은 사람이 담당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최성재 교수는 단순히 ‘물리적인 고독’, 즉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생기는 고독감의 문제보다 개인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심리적인 고독’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물리적인 고독은 주변에 사람만 많아지면 금방 해결되지만 인생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거나 사회·경제적인 조건이 뒤떨어져 마음속에서 저절로 우러나는 고독은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소득층 독거노인에 대한 복지서비스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고독에 빠져 있는 노인들의 실태부터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면서 “노인끼리 ‘상부상조’ 정신으로 다가가 친구가 돼 주는 방법으로 이들의 고독감을 해소시켜 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노인 스스로 의식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고 최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따지고 보면 내일 죽을 것도 아니고 앞으로 10~20년은 더 살 수 있는데도 70세만 넘으면 인생을 포기하는 노인들이 많다.”면서 “운명론적인 생애 의식을 버리고 남들과 어울리며 여생을 보람있게 보내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2009-03-21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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