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독자수필] 사이비 펜팔 사연

[SPECIAL 독자수필] 사이비 펜팔 사연

입력 2009-03-07 00:00
수정 2009-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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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이 지난 일이지만 유독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강했던 대학 신입생 시절에 우연히 성인용 주간지인 《선데이 서울》을 뒤적이게 되었다. 그리고 호기심이 동해서 《선데이 서울》 안의 ‘펜팔 원함’이라는 지면에 나의 성별을 감추고 내 이름 ‘이선기’에서 ‘기’를 ‘희’로 바꿔 가명으로 엽서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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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후에 일어날 황당한 반응을 상상해 볼 겨를도 없이 하숙집에는 엄청난 양의 편지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라면상자에 담아서 들고 들어오는 우체부 아저씨에게 미안스럽기만 했다. 한동안 나는 마구 날아오는 편지들을 읽어보는 요상한 재미에 빠져들었다. 수많은 편지들을 읽다가 어느 날 매우 인상적인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수를 놓은 듯 정성이 담긴 편지의 주인공은 상주가 고향이며 포천에 주둔한 부대에 근무하는 27세의 육군 상병이었다. 농촌에서 청년회장을 맡고 있다가 입대했다면서 도시처녀에 대한 동경과 고독에 몸부림치는 군인의 애절한 마음을 진솔하게 담은 편지였다.

나는 그의 편지를 읽으며, 같은 남성으로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고, 급기야 답장을 보내기 시작했다. 당시 대학 신입생, 장난기가 가시지 않은 나는 방송국의 인기 심야 프로인 ‘한밤의 음악편지’에서 가슴 설레는 언어들을 주워 모아서 사랑에 목마른 성숙한 여성이 되어 사랑의 편지를 쓰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그 군인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고, 날이 갈수록 편지 내용은 점차 청춘남녀의 뜨거운 열정으로 달아올랐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어느 날, 수습불가능한 일이 터지고 만 것이다. 거짓말처럼 편지의 주인공이 휴가를 받아 군복차림으로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선희 씨, 박 병장입니다.” 담장 너머로 흘러 들어오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혼비백산으로 정신이 없었으나 같은 방을 쓰는 학형에게 통사정해 무서운 오빠 행세를 하도록 부탁했다. 형이 나무라다가 나중에는 시골의 외갓집에 갔다고 설득을 해도 소용없었다.

“마지막 휴가를 받아 집에도 안 가고 ‘선희 씨’를 만나러 왔다”며 세상에 없는 ‘선희’만을 찾았다고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청춘시절의 장난치고는 너무도 큰 범죄(?)를 저질렀다는 생각에, 그것도 치마만 두른 여성만 보아도 온몸이 동한다는 군인을 상대로 했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40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분에게 정말 그때의 잘못을 고백하며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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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선기 서울시 구로구 오류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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