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문학비평에서 요구되는 덕목 중의 하나가 신인으로서의 패기이다.세계를 바라보는 뚜렷한 시각,작품을 독창적이면서 치밀하게 읽는 능력,기존의 질서에 대한 도전적인 자세 등이 그것이다.따라서 기성 논의를 따라가는 글,혹은 어떤 특정 이론으로 작품을 재단하는 글은 일단 제외될 수밖에 없다.이런 관점에서 올해 응모작을 심사한 결과,최종까지 논의의 대상으로 남은 것이 ‘연대의 윤리학과 우연의 소설론’(한상현),‘비-인간의 아름다움을 위하여’(허윤),‘연애시의 두 형식,기쁨의 윤리와 슬픔의 윤리’(박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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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황현산(오른쪽) 고려대 교수와 문흥술 서울여대 교수가 평론부문 응모작들을 놓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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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황현산(오른쪽) 고려대 교수와 문흥술 서울여대 교수가 평론부문 응모작들을 놓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한상현씨의 글은 ‘지금-이곳’에 적합한 새로운 소설 형식에 대해 논의를 전개하면서,기성문단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하지만 논지를 이끌어가는 힘이 부족하여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데,이러한 문제점은 비평 대상 작품 선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허윤씨의 글과 박슬기씨의 글을 두고 심사자들은 심각한 논의를 하였다.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두 글 모두 수준을 갖추고 있다.허윤씨의 글은 한강,천운영,편혜영의 작품을 대상으로 하여,2000년대 여성 소설에 나타난 질병의 미학을 다루고 있다.논지 전개의 일관성,유려한 문체 등의 측면에서 단연 돋보이는 글이다.또한 글 자체가 매우 완결되어 있어 그 자체 안정감을 획득하고 있다.하지만,이 안정감이 폐쇄적으로 작동하면서 신인에게 필요한 거친 패기를 앗아가 버리고 말았다.
박슬기씨의 글은 작품을 깊이 있게 파고들면서 새롭게 읽어내는 능력,논지를 압축하고 확산하는 힘 등이 돋보였다.그러나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파격적인 글 속에 내재된 도발적인 비평적 사유이다.이 패기를 더욱 갈고 닦으면서,동시에 비평적 문제의식을 확장해 간다면,훌륭한 비평가로 활동할 것이라는 점에 심사자들은 동의하였다.박슬기씨에게 당선의 영광을 돌리는 점은 이 때문이다.앞으로의 활기찬 비평활동을 기대한다.
황현산,문흥술
2009-01-05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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