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선임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28) 예수고난회 노인조 수사

[김성호 선임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28) 예수고난회 노인조 수사

입력 2008-11-05 00:00
수정 2008-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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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환자가 부르면 어디든지 달려가”

한국을 택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외국인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나름대로의 소명과 사명을 위해 하루하루 자신을 바친다. 그들이 가슴에 새기고 사는 그 소명과 사명이 중생 구제이건 선교이건 지향점은 한결같다.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고 위한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길을 찾는 숱한 이방인들이 그런 것처럼 노인조(60·본명 로렌스 핀·캐나다) 수사(修士) 역시 남을 위해 철저하게 나를 버리는 인물이다.“아픈 사람을 만날 때 내가 살 길과 살아 있음을 더욱 절실하게 새기고 느낀다.”는 노 수사. 그는 이역 만리의 생경한 한국 땅을 밟은 이래 줄곧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의 아픈 몸과 마음을 보듬어 살겠다며 ‘나’를 거듭 거듭 확인해가는 생활 속의 수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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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조 수사
노인조 수사


아픈 사람들과 만날 때 가장 편해

서울 강북구 우이동 245-4 천주교 예수고난회 명상의 집. 우이령으로 향하는 산행 길에 들어 1.8㎞를 오르다보면 만나게 되는 아담한 집이다. 천주교 신자와 성직자들의 피정과 기도가 끊이지 않는 공간. 예수고난회 한국관구 소속 신부, 수사 38명중 7명이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노인조 수사는 그 가운데 유일한 외국 출신이다.

오후 늦게 명상의 집 접견실에서 기자를 맞은 노 수사는 첫 대면부터 큰 웃음을 보여주었다. 오랜 세월 아픈 이들과 함께 해온 종교인의 의례적인 배려일까? ‘조금은 부담스러울’만큼의 잦은 ‘웃음 병’(?)에 어느 순간 전염된 ‘나’를 문득 본다.

서울 돈암동의 예수고난회 신학원 원장에서 물러나 1년간의 안식을 마치고 이곳에 온 게 지난 3월. 평일, 주일 줄곧 이어지는 피정은 물론 예수고난회 아시아태평양 지역 장상들의 모임에서 총무격인 행정 비서를 맡아 이런저런 국제 행사며 모임을 총괄하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공동체에 속한 수사이니 맡겨진 소임에 충실해야지요. 흔히 수사는 닫힌 곳에서 혼자만의 수행과 기도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으로 인식됩니다. 하지만 수사들은 나름대로 엄연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각자의 중요한 일을 합니다.”

공동체에 매인 몸인 만큼 조직의 일원으로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귀띔이다. 그러면서도 못내 안타까움을 털어놓는다.

“아픈 사람들과 만날 때가 가장 편안합니다. 줄곧 함께 해온 아픈 사람들과 떨어져 있을 때 뭔지 모를 불안감이 밀려들곤 해요.”

수사의 말은 괜한 말이 아니다. 지금도 오랜 세월 만나고 인연을 맺어온 에이즈 환자들과의 만남이 생활의 큰 부분.“살기가 힘들다.”며 수시로 걸어오는 에이즈 환자들의 전화 상담이며 “만나 달라.”는 요청에 서슴지 않고 달려 나간다. 노출을 꺼려한 탓에 대부분 으슥한 곳에서 마주한 환자와의 만남을 마치고 돌아설 때마다 안쓰러움을 떨칠 수 없다고 한다.

간호·교육·신학 공부한 뒤 33년째 한국생활

그가 이토록 애달파하고 챙기는 에이즈 환자들은 어떻게 그의 인생행로에 들었고 또 무엇일까.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아일랜드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노 수사는 중학교 시절 만난 봉사에 몸을 바친 한 수녀의 모습을 보며 ‘하느님의 부름’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예수고난회가 운영하는 학교를 다니며 자신도 모르게 종교적 분위기에 빠져들던중 수녀의 헌신적인 이타행에 소신을 다졌고 고등학교 졸업후 1년간 은행에 몸담았다가 고향을 떠나 미국 세인트루이스 수도원을 통해 예수고난회에 입회했다.

“노인들의 요양시설에서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에 들어간게 켄터키주립대학 간호학과.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루이빌시내 병원에서 간호사 일을 하며 중학교 시절 큰 좌표로 있었던 그 수녀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 것이었다.

루이빌 천주교구 대학인 벨라민대학에서 교육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한국으로 들어와 올해로 한국생활 33년째. 처음 한국에 와 정동 명도원에서 한국말을 배우면서도 강릉 갈보리병원과 광주 성요한병원을 찾아다니며 간호사 일을 했다고 하니 이 땅에서의 그의 소임은 애초부터 정해져 있었던 셈이다.

“예수고난회에 입회한 지 얼마 안돼 회원들을 대상으로 해외 선교사 희망자를 골랐는데 이상하게도 당시 내가 속한 시카고 관구의 회원 320명 중 나를 빼놓곤 아무도 나서지 않았어요.”

초창기 한국에 들어와 활동하고 귀국한 선교사를 통해 한국 이야기를 자주 들었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국에 가야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한국행을 자원했다.

“계획을 세울 때마다 번번이 예상치 못한 일이 맡겨져 언제부터인가 계획을 만들지 않는다.”는 말대로 한국생활도 처음엔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 세검정에서 다른 미국인 신부들에게 얹혀 살다가 지금 이곳의 명상의 집이 생기면서 옮겨와 5년여를 살고 광주 명상의 집 원장을 맡아 피정·신학생 지도며 광주가톨릭대 영어 강사로 활동하던중 예수고난회 로마 본원 총장신부의 개인 비서 소임이 떨어져 한국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아픈 이들과 함께 한다.”는 애초의 계획에선 아주 먼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길은 정해져 있었던 것일까. 로마에 살면서도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런던 에이즈 환자 쉼터에서 만난 에이즈 환자의 고통을 바라보며 초심을 굳게 다졌다.

에이즈 환자 쉼터 전국 6곳 만들어 운영

“에이즈 환자들이 힘을 모아 세운 대규모 쉼터였어요. 병원과 호스피스 병동, 장례장까지 갖춘 큰 쉼터였는데 그곳의 고통받는 환자들을 보면서 종교인이 이런 쉼터를 운영한다면 환자들에게 훨씬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이후 쉼터의 의사며 환자들을 쉼없이 만났고 아일랜드 쉼터와 파리 에이즈병원을 찾아 환자들과 어울려 살았다고 한다. 물론 한국에 돌아와 무엇을 할지를 마음에 점찍어둔 채였다.

이렇게 ‘에이즈 공부’에 매달려 살다가 한국에 돌아와 청주의 외딴 수도원에 살던 중 에이즈 환자를 돕는 고미리암 수녀를 만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에이즈 환자와의 삶이 시작되었다.

고 수녀와 서울에서 첫 에이즈 환자 쉼터를 만들었고 그 이후 천주교계가 운영하는 비슷한 쉼터가 서울 두 곳과 원주, 광주, 대구 등지에 모두 6개가 생겨났다.

2002년부터 3년간 가톨릭에이즈협의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전국의 쉼터에 살고있는 70여 명의 환자들을 모두 만났다고 한다. 환자의 임종은 물론, 시신의 마지막을 돌보는 염이며 장례까지 가리지 않았다.

“처음 한국에 올 무렵을 돌이켜보면 에이즈 환자를 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어요. 그래도 에이즈 환자들이 겪는 고통과 불편한 대우는 여전합니다. 병으로 인해 겪는 육체의 고통은 정신적인 아픔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요.”

수용시설에 들어 사는 에이즈 환자가 점점 줄고 대신 아프면서도 사회 속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 그래서 그들을 돕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단다. 종전의 쉼터들을 묶어 사회 전체의 차원에서 돌보기 위한 협의체를 천주교주교회의 산하에 두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2003년 본의와는 달리 신학원 원장을 맡으면서 에이즈 환자들과 조금씩 멀어진 것 같아 미안합니다. 마음은 여전히 그들과 있지만 항상 몸이 함께 할 수 없는게….”

말 끝을 흐리는 노 수사가 말 대신 시편을 펼쳐 보인다.‘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살펴보시어 아십니다.’(시편 139) 비록 내 맘과 같지않게 몸이 멀어도 나를 보고 알아주는 하느님의 뜻으로 위안을 삼는단다.

“나의 노출로 에이즈 환자들의 신변이 노출될까 걱정한다.”는 말대로 사진 찍기를 완강히 거부하다 마지못해 고개를 숙인채 성모자상 앞에 선 수사가 겸연쩍은 얼굴로 말을 맺는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과 인연은 모두가 서로에게 큰 선물입니다. 그것이 작건 크건. 수도자인 내가 택한 길은 그중에서 아픈 사람들을 통해 하느님과 만나는 것뿐이겠지요.”

kimus@seoul.co.kr

■ 노인조 수사는

1948년 캐나다 온타리오 출생

1968년 예수고난회 입회

1971년 종신서원

1973년 켄터키주립대학 간호학과 졸업

1975년 루이빌 ‘벨라민대학’졸업, 한국 입국

1977∼1982년 우이동 명상의 집에서 사목

1982∼1988년 광주 명상의 집 원장

1988∼1995년 로마 본원 총장신부 개인 비서

1995년 한국 귀환

1998년 서울서 에이즈환자 쉼터 시작

2002∼2005년 가톨릭에이즈협의회 회장

2003∼2006년 예수고난회 신학원장

이종배 서울시의원 “마약 용어 일상화 방치 안 돼… 실질적 제한 위한 법 개정 건의할 것”

서울특별시의회 마약퇴치 예방교육 특별위원회 이종배 위원장은 13일 서울시 마약대응팀과 외식업위생팀으로부터 ‘마약류 상호·상품명 사용 문화 개선’ 추진 현황과 향후 사업 방향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서울시는 「식품표시광고법」과 「마약류 상품명 사용 문화 개선 조례」에 따라 2023년 5월 기준 마약류 상호를 사용하던 음식점 37개소 중 26개소의 상호를 변경하도록 계도해 현재 11개소가 남아 있는 상황이라고 보고했다. 이 중 8개소는 전국 단위 체인점으로 식약처가 홍보·계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영업 신고·명의 변경 시 마약 상호 사용 제한을 권고하고 법정 위생 교육 관련 내용을 포함해 연간 약 10만명의 영업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간판(최대 200만원), 메뉴판(최대 50만원) 등 변경 비용도 식품진흥기금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약대응팀은 청소년들의 SNS 기반 마약 접촉을 차단하기 위한 온라인 감시 활동 현황도 함께 설명했다. 시는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SNS상에서 마약류 판매 의심 게시글을 상시 점검해 위반 여부를 확인한 뒤 방송통신미디어심의위원회에 차단을 요청하고 있으며 2025년 총 3052건, 2026년 2월 현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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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이동 명상의 집에서 사목
2008-11-05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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