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수사기관 사칭은 단골… “자녀 납치” 등 약한고리 들먹
국내 A은행에 근무하는 B씨는 얼마 전 ‘그분’한테서 전화를 받았다.1주일에 한두 번씩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전화번호 순서대로 ‘그분’ 전화를 받는다.그분은 “D백화점에서 카드 쓰신 적 있지요?”라고 묻는다. 이어 “타인이 당신의 신상명세를 도용해 만든 카드를 범죄에 이용하고 있다. 대검에 이첩하겠다. 대검 수사관이 전화할 테니 ‘사적인 행동을 자제하고’ 전화를 받으라.”고 안내한다.‘대검 수사관’에 이어 ‘검사’한테서까지 전화가 걸려온다. 하지만 세 번 모두 전화번호는 똑같다.B씨는 ‘그분’ 전화가 올 때마다 일부러 속는 척하면서 전화를 오래 받으려 한다.“제가 전화를 받는 동안에는 적어도 다른 사람한테 보이스 피싱을 못하잖아요.”
2006년 6월 첫 피해가 발생한 이후 보이스 피싱은 갈수록 수법이 교묘해지고 있다. 초기에는 세금·건강보험료·국민연금·보험금을 환급해 주겠다며 피해자를 현혹해 현금지급기 조작을 유도했다. 최근에는 통신사나 금융기관·수사기관을 사칭해 ‘통신요금을 환급해 주겠다.’거나,‘신용카드의 명의가 도용되었다.’ 혹은 ‘형사사건 피의자를 검거했는데 당신 명의를 도용한 통장계좌가 나왔으니 당신 계좌에 있는 예금을 보호하기 위해 보안코드를 설정해 주겠다.’는 식으로 현금지급기 조작을 유도하는 수법까지 등장했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1회 전화로 범행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금감원 직원 등을 사칭하며 여러 차례 전화해 범행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발신번호 조작이 가능한 인터넷 전화로 대검찰청ARS로 연결되도록 해 피해자를 속이는 대담한 사례도 있었다.
정치·사회적 현안을 이용하기도 한다. 입시철에는 대학에 합격했다고 하고 대통령 취임식 즈음에는 참석자로 선정됐다고 사기친다. 심지어 삼성특검에 적발된 부당징수 보험금을 환급해 주겠다고 했다가 적발된 경우도 있다. 올해부터 시행 중인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에 선정됐다는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보이스 피싱이 기승을 부리면서 법원에서도 보이스 피싱 범죄자는 물론 단순가담자에게도 중형을 선고하는 추세다. 지난해 6월 보이스 피싱에 가담한 타이완인에게 창원지방법원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지난해 9월에는 서울중앙지법이 보이스 피싱으로 수천만원을 뜯어낸 혐의(사기·공갈)로 기소된 중국인 왕모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범행에 가담한 중국인 곽모씨와 장모씨에게 각각 징역 3년과 2년6월을 선고했다. 지난해 6월 수원지법은 보이스 피싱 피해자들이 입금한 돈을 인출해 송금 담당자에게 전해준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5년이 선고된 타이완인 3명의 항소를 기각하기도 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2008-04-02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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