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선묘조제재경수연도’중 조찬소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선묘조제재경수연도’중 조찬소

입력 2008-02-21 00:00
수정 2008-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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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잔칫집 부엌 풍경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거(李·1532∼1608)는 지금의 서울시 부시장 격인 한성우윤으로 있던 선조 37년(1604년) 11월12일 72세의 나이로 형조참판에 발탁됩니다. 그러나 사관(史官)은 이 인사가 마뜩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 날짜의 ‘조선왕조실록’에는 ‘이거는 사람됨이 용렬하고 나이도 노쇠한데 101세의 편모가 있으므로 이 벼슬에 제수되었다.’고 편치 않은 심기가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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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박물관 소장 ‘선묘조제재경수연도(宣廟朝諸宰慶壽宴圖)’다섯폭 가운데 두번째 그림인 잔칫집의 야외 부엌 장면.
홍익대 박물관 소장 ‘선묘조제재경수연도(宣廟朝諸宰慶壽宴圖)’다섯폭 가운데 두번째 그림인 잔칫집의 야외 부엌 장면.
실제로 이거가 참판에 오르는 데는 어머니 채씨의 존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선조는 이거의 노모 이야기를 두해전 승정원으로부터 듣고는 매우 기뻐했다고 하지요.7년동안에 걸친 임진왜란의 참혹함 속에서도 이거의 어머니가 백수(白壽)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 나라에 좋은 징조라고 여겼습니다. 선조는 채씨를 기쁘게 하려고 어머니를 잘 모신 효자 아들 이거를 형조참판에 임명한 데 이어 이거의 아버지에게는 이조참판을 추증하여 채씨를 정부인(貞夫人)으로 높였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진흥군 강신 등 13명은 ‘어르신을 받드는 이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을 봉로계(奉老契)를 만들게 되지요. 이들도 모두 편모를 모시고 있었는데, 특히 강신과 공조판서 윤돈, 여흥군 민중남, 병조참지 윤수민, 장악원 첨정 권형의 어머니는 모두 팔순을 넘은 고령이었습니다.

●모두 5폭… 중신 부모 장수축하연 그려

이들이 채씨 정부인과 자신들의 노모를 모시고 장수를 축하하는 잔치를 열기로 했다는 소식에 선조는 적극적으로 지원하라는 분부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왜란의 뒤끝이라 환갑잔치 말고는 풍악을 금지한다는 하교가 있었지요. 예조는 ‘이들의 모친이 모두 죽음에 임박한 연세로서 날을 받아 함께 모여 한 집에서 즐겁게 노는 것이 크게 아름다운 일’이라고 선조에게 건의하여 풍악을 울려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선조 38년(1605년) 4월9일 삼청동에 있는 예조의 부속건물에서 큰 잔치가 벌어지게 되지요.

‘선묘조제재경수연도(宣廟朝諸宰慶壽宴圖)’는 이날 잔치의 모습을 다섯 폭으로 나누어 그린 기록화입니다.‘선조 시대 여러 재상이 참여하여 펼친 경로잔치 그림’쯤으로 풀이할 수 있겠지요.▲손님을 맞는 대문 안팎의 정경에서부터 ▲음식을 만드는 임시 부엌 ▲계원들이 회동하는 광경 ▲대부인에게 예를 올리는 모습 ▲주인공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연회 장면을 담았지요.

이런 종류의 기록화는 대개 참여한 사람의 숫자만큼 그려서 나누어 갖곤 했습니다. 경수연도도 최소한 13권이 만들어졌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그런데 과거에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기록화가 훼손되거나 없어지면 모사본을 만들었습니다. 또 집안의 대소종가에서도 모사하여 갖고 있는 게 보통이었지요. 현재 세 가지 ‘선묘조제재경수연도’가 전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전통음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

이 가운데 홍익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이 원본 격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고려대박물관이 갖고 있는 것은 18∼19세기, 국립문화재연구소 것은 19세기에 다시 모사한 것이지요.‘남씨 집안에 내려오는 귀중한 문서’라는 뜻을 가진 ‘남씨전가경완(南氏傳家敬翫)’이라는 표제의 두루마리에 담긴 고려대박물관 소장본은 의령 남씨 집안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봉로계의 일원으로 의령 남씨인 당시 형조참판 남이신의 후손이 물려받았을 것입니다.

이 경수연도에서 조찬소(造饌所) 또는 숙설소(熟設所)라고 불리는 야외의 임시 부엌을 묘사한 두번째 그림이 특히 전통음식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하지요. 일반적으로 풍속화나 기록화에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나 부엌의 모습은 잘 등장하지 않는데, 이 그림에서는 음식을 만드는 장소와 사람, 접대하는 장면까지 자세히 묘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부엌 장면뿐만 아니라 다른 네 폭의 그림에서도 음식의 종류나 가짓수, 독상차림, 상의 형태나 그 위에 굄새로 담아진 모습 등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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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suh@seoul.co.kr
2008-02-21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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