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육계 현실 통해 한국 교육 되돌아보기

일본 교육계 현실 통해 한국 교육 되돌아보기

서재희 기자
입력 2007-11-27 00:00
수정 2007-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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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리 교육’에 학력 저하… 가정교육으로 중심축 이동중

우리나라 교육계에서 끊이지 않는 논란 가운데 하나가 고입 평준화 제도다.31년이라는 짧지 않은 역사 속에 평준화 제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입 제도, 사교육비 절감 대책 등과 맞물려 만신창이가 됐다. 평준화 정책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특수목적고와 자립형사립고 등은 입시 비리와 귀족학교 논란 등 또 다른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에서는 한국의 평준화 정책과 유사한 ‘유도리(여유) 교육’ 정책이 학력 저하를 초래했다며 뭇매를 맞고 있다. 지난 9월 취임한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교육 현장에 경쟁 원리를 도입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교육 재생회의’를 어떻게 이어 갈지도 주목되고 있다. 고형일 한국교육개발원장이 김태영 도요(東洋)대 교수에게 변화하는 일본 교육계의 현주소와 교육정책 등을 자세히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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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전 총리의 ‘교육 재생회의’는 일본 교육 전반에 수용됐나.

-후쿠다 총리는 당선된 이후 “교육재생 방침은 계속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재생회의 결론을 존중해 가면서 정책을 펴겠다는 뜻이다. 다만 아베 총리 시절 일본인의 윤리나 도덕관을 새롭게 만들겠다는 의미인 ‘아름다운 일본을 만드는 회의’는 후쿠다 총리 이후 없어졌다. 경제 ‘제일주의’를 수정하겠다는 의지다. 교육 재생회의는 후쿠다의 이념이 반영돼 이어질 것이다.

▶어떻게 바뀔 것으로 전망하나.

-아베가 일본의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강하게 표출했다면 후쿠다는 한국이나 중국 등 주변국을 고려하는 편이다. 아베는 젊고 경륜이 짧은게 컴플렉스였다. 이 때문에 무리하게 논리나 근거도 부족한 채 여러 정책을 밀어부친 측면이 있다. 후쿠다는 주변의 의견을 들어가면서 정책을 정한다.

교육 측면에서 후쿠다 총리의 캐치프레이즈가 ‘자립과 공생’이다. 젊은이들이 국가에만 의지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일하고 공부하면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교육이 도와줘야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력이나 기술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현실적 학력관을 갖췄다.

아베는 고생을 해본 적이 없어 보통 사람들의 어려움과 기분을 몰랐다. 보통 사람들이 필요한 보다 현실적인 교육을 하게 될 것이다.

▶후쿠다 총리의 세계화 교육관은.

-아베 총리는 일본인으로서의 프라이드, 애국심을 강조하는 교육관을 가졌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학력이 저하되고 자살이 늘고 있고, 학교에서는 집단 따돌림이 문제가 되고 있다. 어린이가 부모를 살해하고 부모가 어린이를 살해하는 일이 매일 발생하고 있다. 아베는 세계적 기준에 다다르기 위해 민족주의를 부추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세계화도 중요하지만 눈 앞의 과제를 빨리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후쿠다는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유도리(여유) 교육은 어떻게 될까.

-얼마 전 문부과학성에서 유도리 교육으로 수업을 너무 줄였다고 국민 앞에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반성한다고 인정했다. 국가가 유도리 교육이 잘못됐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학부모나 시민들도 유도리 교육이 학력의 저하를 가져와 교육의 효과가 없었다고 보는 게 일반적 생각이다.

유도리 교육에는 ‘종합 학습시간’이라는 것이 있었지만 선생님들이 이를 의미 있게 사용하지 않았고 또 스스로도 뭘 해야 할지 잘 몰랐다. 취지는 나쁘지 않았지만 실현시키기 위한 능력은 부족했다. 그래서 부모들도 자연스럽게 ‘유도리 교육이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됐다.

▶세계 학력대회에서 일본이 상위권인데 왜 학력 저하라고 보나.

-일반 시민들이 학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젊은이들이 예전보다 상식도 없고 사고력도 부족하고 경박하게 실천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보며 시민들은 전체적으로 학생들 질이 떨어지고 학력도 떨어졌다고 생각하게 됐다.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이 있나.

-시대를 총괄해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70년대 일본 전국 학력 테스트가 있었는데 과당 경쟁이라며 유도리 교육으로 중지됐다. 올해 그 시험이 재개됐다. 긴 기간을 두고 비교할 수 있는 데이터는 없지만, 대학 교원으로서 유도리 교육 시작점인 현재의 대학 2년생이 이전 학생보다 질이 분명히 떨어졌다고 느낀다. 사고력이나 생각을 종합하는 힘,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힘 등이 떨어졌다. 이게 유도리 교육의 마이너스가 아닌가 생각한다.

▶일본에서 학력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관계를 좋게 하거나 사회에서 잘 생존해 갈 수 있는 능력이 학력인데, 의미가 자꾸 좁혀지고 있다. 학력은 입장에 따라 다르다고 본다. 학부모들은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 좋은 직장을 얻어 안정적 생활을 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정부나 세계에 통할 수 있는 두뇌를 양성하고 기술을 창출하기 위한 능력을 학력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경쟁 시대를 감안하면 세계적 인재를 키우는 쪽으로 학력의 의미가 변해야 하지 않나.

-한국처럼 일본도 옛날부터 관료주의적 교육 구조가 바뀌지 않았다. 일본 밖의 세계를 보고 일본 교육계로 들어온 사람이 많지 않다. 새 생각을 가진 새 사람이 교육계로 들어와 실천하는 게 부족하다. 활동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나 행정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국제화가 슬로건으로 그치고 국내용으로 고착화 되지 않나 생각한다.

▶일본도 학교 폭력 문제가 많아서 고민을 많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부적응 문제를 가정에서 근원을 찾고 있는 것 같은데.

-현재 일본의 학교가 가정을 대신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폭력을 하지 말라는 것은 가정에서만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의 일본 가정은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 TV에서 부모가 학교나 선생님에 대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게 많이 나온다. 상식적으로 아주 이상할 정도다. 부모에게 상식이 없는데 어린이가 부모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최근 일본에서는 가정 교육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다.

▶앞으로 일본의 청소년 대책은 부모 교육 중심으로 가게 되나.

-기본적으로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이 함께 가야 한다고 일본 교육계는 생각한다. 학교 교육이 잘 되기 위해서는 가정 교육이 잘 되어야 한다. 후쿠오카 교육위원회에서 어린이 양육, 가정교육을 위한 핸드북을 만든 적이 있다. 옛날에는 부모들이 어린이 교육을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을 갖췄는데 요즘은 부모 교육위원회가 양육시키는 역할을 한다.‘어린이 교육은 부모 교육으로부터’라는 슬로건까지 나오고 있다.

▶재일 조선인의 민족교육 어떻게 하고 있나.

-재일 한국인이 1년에 1만명 정도씩 일본 국적으로 바꾸고 있어. 과거처럼 민족성을 전달하는 교육은 지금부터는 어려워지는게 아닌가 한다. 그런데 유학으로 캐나다를 갔는데 한국 젊은이가 재일 한국인을 전혀 몰라서 충격을 받았다. 그 경험을 토대로 한국인이란 것을 생각하게 됐고 민족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젊은이들이 민족문화를 알 수 있도록 소개하고 접할 기회를 많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시 효과를 거둔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젊은이들이 문화를 접하면서 앞으로 살 인생 중 민족을 원할 때 그들을 위해 지식이나 정보, 한국과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제공할지가 민족 교육의 과제다.

정리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2007-11-2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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