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한나라당 후보 검증 청문회는 우리 정당 사상 최초 시도라는 것 외에는 어떠한 감흥도 주지 못했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국민들은 역시나 하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나마나한 청문회, 변명으로 일관한 면피용 청문회, 짜고 치는 청문회라는 비판론에 휩싸인 것은 당연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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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이 소속 후보 검증을 하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이런 결과를 잉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사권이 없는 검증위원회가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게 무리였고, 무엇보다 민감한 현안에 대한 후보들의 비협조로 이미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지지율 1,2위인 유력 대선주자 2명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드높은 만큼 검증위가 후보들이 받고 있는 의혹을 낱낱이 파헤쳐야 하지만, 후보들에게 생채기를 내지 않고 보호해야 하는 점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이중적 잣대가 더욱 검증의 울타리를 좁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당위론과 현실론 간의 외줄타기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 청문위원들은 송곳 질문을 펼치기도 했으나 전체적으론 백화점식 의혹 나열 수준에 그쳤다. 설령 1차에 송곳 질문이 있었어도 2차 후속 질문이 영 매가리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실 검증 청문회는 강재섭 대표의 작품이다. 강 대표는 2002년 대선 때처럼 두번 다시 상대방의 네거티브 공세에 당하지 않겠다며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고,‘12월 한겨울 광야에 홀로 서도 흔들리지 않는 건강한 후보’가 명분이었다. 그런데 당시 이회창 후보의 패배는 반드시 이것 때문만은 아니다. 온갖 네거티브 폭로 공세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는 꿋꿋하게 지지율 1위를 지킨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것보다는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간의 후보단일화가 더 큰 폭발력을 가졌던 것이고, 인의 장막에 겹겹이 둘러싸인 이 후보 진영의 문제점, 국민 감성에 호소한 노 후보의 선거운동 방식, 즉 공약 이슈 선점과 TV토론 강세 등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강 대표의 판단처럼 네거티브에 적극 대응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본선 승리를 보장한다는 인식은 잘못일 수 있다. 부실 청문회는 그 결과물이다.
또 하나 짚을 것은 선거, 특히 대선은 그 자체가 검증 과정이란 점이다. 인물 검증과 정책 검증은 예비후보 이전단계에서부터 대선 직전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그 와중에 당이 주관하는 후보 검증 청문회는 별다른 존재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본다. 지금과 같이 한계가 너무나도 분명한 청문회라면 더욱 그렇다.
청문회는 원래 고위 임명직을 대상으로 하는 게 원칙이다. 대법관이나 각료와 같은 직위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비전은 갖췄는지, 도덕적 흠결은 없었는지 의회가 국민을 대신해 꼼꼼히 살펴보는 것인데, 임명직은 선거직처럼 대국민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선 후보들을 대상으로 검증 청문회를 여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여론조사를 비중있게 후보선출에 반영하는 나라도 역시 우리밖에 없다고 한다. 역동적인 정치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나, 이제는 이런 것들을 차분하게 재정비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다.
청문회 대신 후보들의 신상공개를 훨씬 앞당겨 전방위 검증이 이뤄질 수 있게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각 정당과 시민단체, 언론 등이 참여한 후보검증 공동위원회를 설치하는 것도 괜찮은 방안으로 보인다. 그 중심에는 국민의 알 권리 신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