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3) 경남 거창군 가북면 개금마을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3) 경남 거창군 가북면 개금마을

이호정 기자
입력 2007-06-20 00:00
수정 2007-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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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자락의 경남 거창군 가북면 개금마을.

거창의 동북부 해발 800m 고지 비탈면에 자리잡은 하늘 아래 첫 동네다.

북으로 경북 성주군과 맞닿아 있고 동으로 재를 넘으면 합천 해인사가 나온다. 개금(開金)은 옛날에 금이 많이 나와 붙여진 이름. 지금도 금광의 흔적이 있다.

20여가구 70명 남짓 주민들은 배추, 감자 등 신선한 고랭지채소를 일구며 살아간다. 요즘은 고(高)부가가치 작물인 오미자를 주로 재배한다. 이곳 오미자는 해발 800m의 고지대에서 자라나 병충해에 강하다. 농약을 사용할 필요가 거의 없고 딴 자리에서 바로 먹을 수 있을 만큼 청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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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도 더 된 허물어져 가는 흙집에서 45년째 목탁을 깎고 있는 김종성(오른쪽)씨.
200년도 더 된 허물어져 가는 흙집에서 45년째 목탁을 깎고 있는 김종성(오른쪽)씨.
“감기래도 올라카믄 고마 한컵 마시뿔면 그냥 난다 안캅니꺼.

맛은 또 얼매나 기가 막힌데예.”

마을이장 신일기(54)씨가 오미자 차를 권하며 자랑한다. 오미자는 동의보감에 폐와 신장을 보하고 피곤함, 목마름, 해소 등을 낫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투명한 붉은 빛깔의 오미자차는 약효뿐 아니라 맛도 탁월하다. 설탕에 잰 오미자원액에 물을 섞고 얼음을 띄워 내온 오미자 냉차. 그 어떤 여름 청량음료도 이것과 비교할 수 없을 듯하다.

신이장은 작년에 1500평 밭에서 2000㎏의 오미자를 수확해 200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워낙 품질이 좋아 판로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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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장터에 가도 한주먹에 2000~3000원 하는 산딸기가 개금마을에는 길가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학교를 마친 경선이가 간식거리로 산딸기를 따고 있다.
시골장터에 가도 한주먹에 2000~3000원 하는 산딸기가 개금마을에는 길가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학교를 마친 경선이가 간식거리로 산딸기를 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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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금마을 입구에 세워진 초라한 불당(佛堂). 마을이장 신일기씨가 열매를 맺기 시작한 오미자를 살펴보고 있다. 폐교가 된 용암초등학교 개금분교.66년 개교해 97년 폐교할 때까지 68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는 교적비가 세워져 있다.(위에서부터)
개금마을 입구에 세워진 초라한 불당(佛堂).
마을이장 신일기씨가 열매를 맺기 시작한 오미자를 살펴보고 있다.
폐교가 된 용암초등학교 개금분교.66년 개교해 97년 폐교할 때까지 68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는 교적비가 세워져 있다.(위에서부터)
개금마을의 또 다른 특산물은 마(麻)다. 마을 어귀 마밭에서 지줏대를 세우던 김용호(56)·정연옥(47)부부.“여기 마는 많이 다르지예. 우선 고마 단단하면서도 진이 많고, 짧지만 야물지예. 보관도 오래 간다 안캄니꺼.” 부부가 재배하는 마밭은 600평 남짓.4월에 파종해 10월에 수확한다. 작년에는 박스당 6만원씩 300박스를 생산해 수입이 짭짤했다. 위장에 좋다는 마즙을 갈아 요구르트와 섞어 먹으면 맛도 그만이려니와 속이 든든해지고 원기회복도 빠르다고 한다.



마을 아래 하개금에는 목탁만을 만들며 살아가는 가족이 있다. 목탁장인으로 유명한 김종성(61)씨. 그는 평생 목탁을 만들어 절을 찾아 다니며 팔던 선친의 뒤를 이어 ‘목탁장이’가 됐다. 다 쓰러져가는 200년 쯤 된 흙집은 선친 때부터 목탁을 만들어 온 작업장이다. 성철 큰 스님으로부터 ‘성공(成空)’이라는 법명(法名)을 받았다는 김씨.“불심(佛心) 하나로 이 작업을 해왔지… 목탁은 모양새 암만 좋아야 소용 없대이. 소리가 좋아야제. 그럴라문 혼을 불어 넣어야 하는기라.” 동생 종경(51)씨와 골칼로 목탁의 구멍을 파는 그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목탁의 재료는 100년 이상 묵은 생강 나무 뿌리. 진을 빼기 위해 3년을 진흙에 묻어 두었다가 소금물에 적셔 가마솥으로 쪄 낸 뒤 그늘에 사흘동안 말린 다음 작업을 시작한다. 일주일을 꼬박 깎고 파고 다듬은 뒤 들깨 기름을 일곱 번 발라 완성한다. 그의 목탁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과는 소리와 내구성면에서 비교할 수 없다. 작업실인 2평이 못되는 방의 흙벽에는 ‘불평보다 인내를’이라는 글이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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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부터는 서울에서 일류호텔 요리사를 하던 둘째 아들 학천(36)씨가 3대째 가업을 잇겠다고 내려와 함께 목탁을 만들고 있다. 아비로서 안쓰럽고 걱정되지만 내심 고맙고 장하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마을의 유일한 초등학생인 아홉살 경선이가 조그만 바구니를 들고 고샅길을 나선다. 몇걸음 가지 않아 길가 옆에 지천으로 널린 산딸기를 따기 시작한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연신 먹어가며 열매를 따 바구니에 넣는다.“산딸기가 맛있을라문요, 알맹이가 크고 물렁물렁하면서 새빨개야 한대요.” 묻지도 않았는데 친절하게 산딸기 골라따는 법을 설명해 준다. 오늘 딴 산딸기는 일흔이 넘어 자신을 낳아준 아빠에게 줄 간식거리다.

금란화가 함초롬 핀 흙 담장에 길게 그림자가 드리운다. 저녁을 짓는 집의 굴뚝에선 연기가 피어 오른다. 저마다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산꼭대기 마을의 하루가 저문다.

사진 글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2007-06-2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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