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향은 안동을 향해 먼 길을 떠났다. 밤하늘에서 별이 치마폭으로 떨어지는 흉몽을 꾸고 또한 나으리께서 보내주신 정화수의 물이 핏빛으로 변한 흉사를 보고 그냥 그대로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으리의 신상에 무슨 변고라도 일어난 것일까.
다음날 아침 두향은 목욕재계를 한 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소복까지 준비해 가지고 안동을 향해 떠났다.
단양에서 안동까지는 200여리의 험난한 산길. 중도에는 반드시 죽령을 넘어야 했다. 죽령의 높이는 689m로 영남과 호서를 갈라놓는 대재이자 오르막 30리, 내리막 30리의 가파른 고갯길. 아흔아홉 굽이의 고갯길은 각종 곡물과 상품을 수송하는 중요한 통로였으나 그 무렵 산적들이 들끓어 한낮에도 행인들을 괴롭히고 밤이면 맹수들이 사람을 해치는 험악한 태산준령이었다. 아녀자 혼자의 몸으로는 도저히 가고 올 수 없는 심산유곡이었다.
생각 끝에 두향은 2년 전 자신의 부탁으로 나으리께 분매를 전해주었던 여삼과 동행하기로 결심하였다. 여삼은 그 사이 한층 더 늙어 노쇠하였으나 두향으로부터 전후 사정을 전해 듣고는 흔쾌히 이를 수락하였다.20여년 전 퇴계가 단양의 군수로 재임하고 있을 무렵 바로 곁에서 수발을 들었던 여삼이었으므로 나으리께서 돌아가셨다면 빈소에서 분향이라도 드려야 하는 것이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안동까지의 먼 길을 함께 떠났다.
두향은 전모를 써 얼굴을 가리고 장옷을 입었다. 장옷은 부녀자들이 나들이를 할 때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 머리에서부터 길게 내려 쓰던 두루마기 모양의 옷이었다. 쓰개치마를 써도 무방하였으나 때는 엄동설한의 동지섣달. 매서운 삭풍을 막기 위해서는 두꺼운 솜으로 누빈 장옷이 제격이었던 것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두향이와 여삼은 나흘 만에 안동 고을을 거쳐 도산서당이 있는 토계리(土溪里)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토계리에 도착한 순간.
두향은 집집마다의 지붕 위에서 흰옷들이 펄럭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본 순간 두향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집집마다의 지붕에 한결같이 흰옷을 널어 놓는다는 것은 죽은 사람의 혼령을 기꺼이 받아들여 달라고 저승사자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동리에 초상이 났음을 알리는 풍속.
집집마다의 지붕 위에 흰 옷을 널어놓는다는 것은 마을의 중요한 사람이 죽었음을 알리는 일종의 풍장(風葬) 행위였던 것이다.
-돌아가셨다.
두향은 맥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으면서 혀를 깨물며 중얼거렸다.
-나으리께서는 분명히 연세하신 것이다.
2006-11-2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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