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614)-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50)

儒林(614)-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50)

입력 2006-05-30 00:00
수정 2006-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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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50)

물론 유가사상을 낳은 공자도 처음에는 위인주의자처럼 보였다.

공자는 68세 때에 이르러 마침내 13년에 걸친 주유열국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까지 천하의 제후를 만나며 왕도정치를 펼치기 위해 갖은 간난신고(艱難辛苦)의 계절을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공자는 오로지 제자들을 가르치며, 위기지학에만 전념하였다.

그러면서도 공자는 ‘병이 들었을 때 임금이 문병 오시면 머리를 동쪽에 두고 조복을 위에 덮고 큰 띠를 그 위에 걸쳐놓고 맞았으며, 임금이 오라는 명을 내리면 수레가 준비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떠나셨다.’는 논어의 기록처럼 군신의 예를 반드시 지켰다.

‘임금이 부르면 수레를 기다리지 않고 바삐 간다.’는 의미의 ‘불사가(不俟駕)’란 말은 바로 이런 공자의 태도에서 비롯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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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48세 때에 풍기군수를 끝으로 죽령을 넘은 이후로 퇴계는 자신의 인생을 ‘앞과 뒤’로 이분하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인생에 있어 나아가고 물러감에 있어서 ‘앞과 뒤(前後)’가 다른 듯하다. 전에는 임금의 명령을 듣기만 하면 곧바로 달려갔으나 뒤에는 부르시면 반드시 사양하였으며, 나아가더라도 굳이 머무르지 않았다.”

이에 비하면 율곡은 성리학에 관한 명저들을 저술하였으면서도 또한 평생 동안 정치일선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특히 율곡이 1584년 49세의 나이로 죽기 직전인 선조16년,‘십년이 못가서 반드시 화란(禍亂)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예언하면서 미구에 닥쳐올지도 모르는 왜의 ‘흙이 무너지는 화(土崩之禍)’에 대비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였던 것을 보더라도 율곡은 시대의 징표를 꿰뚫어볼 수 있었던 경세가이자 대정치가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새삼스레 이제와서 퇴계의 ‘위기지학’이 옳은지, 율곡의 ‘위인지학’이 더 옳은지 분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공자가 일찍이 ‘옛날에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공부하였으나 오늘날 배우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기기 위해서 공부한다.(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라고 말하였던 것을 보더라도 유교의 학문은 결국 서양철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수양론(Self-Cultivation), 즉 몸과 마음을 다듬어 인(仁)을 완성하기 위한 위기지학인 것이다.

퇴계가 한때 율곡에 대해서 ‘사람됨이 명랑하고 시원스러울 뿐 아니라 지식과 견문도 많고 우리의 학문에 뜻이 있으니, 후배가 두렵다는 전성(前聖:공자)의 말이 나를 속이지 않았다.’고 제자 조목에게 보낸 편지에서 극찬하고 있으면서도 ‘다만 그가 지나치게 사장(詞章)을 숭상한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 이를 억제하고자 시를 짓지 않도록 당부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은 율곡의 천재성이 학문에 전념하기보다는 지나치게 다방면에 화려하여 결국 공자가 말하였던 ‘다른 사람을 이기기 위해서 공부한다.’는 사장지학이나 공명지학(功名之學)에 빠질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위인지학은 결국 입신양명의 출세를 위한 학문적 도구로 전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있으므로.
2006-05-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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