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532)-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2)

儒林(532)-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2)

입력 2006-02-03 00:00
수정 2006-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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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22)

금강산의 운수행각 중에 쓴 20여 편의 시중에서 이 ‘풍악산에서 작은 암자에 있는 노승에게 시를 지어주다(楓岳贈小庵老僧)’라는 시야말로 1년반에 걸친 율곡의 행장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일종의 고해시(告解詩)인 것이다.

이 시를 보면 율곡은 어디까지나 자신을 불자가 아닌 유자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있었음을 알게 되며, 유가의 입장에서 불교를 비판하는 젊은 선비, 즉 유생임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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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암자에서 은둔하며 솔잎을 먹으며 참선하고 있던 노승과 한바탕 선문답을 벌여 자신이 노승을 거꾸러트리고 이겼음을 의기양양하게 드러내고 있는 듯한 이 시속에는 노승을 위해 써준 자신의 칠언절구를 마치 진리를 깨닫고 쓴 오도송(悟道頌)으로까지 인용하고 있어 이러한 율곡의 모습을 보면 1년여에 걸친 금강산에서 율곡은 결코 불법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던진 궁극처’를 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비록 율곡의 행색은 ‘의암(義菴)’을 법명으로 하고,‘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이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하는 조주의 화두를 결택함으로써 겉으로는 완전히 불제자가 되었으나 실체는 여전히 유생의 모습을 벗어나고 있지 못함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율곡은 돈오의 불법을 깨우치고는 싶어 하였지만 ‘목숨을 내던질 곳(放身命處)’의 궁극처는 구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일찍이 선의검객 마조는 제자 백장(百丈)이 와서 ‘부처의 본뜻은 어느 곳에 있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바로 자네의 목숨을 내던진 곳에 있다.(正是汝放身命處)’고 대답하였다.

또한 마조의 제자 중 출가하지 않았던 방(龐) 거사는 마조의 문하에서 2년간 머물며 깨달아 ‘온전히 깨달은 범부’로 일생을 보냈는데, 어느 날 스승 마조에게 ‘일체의 존재와 무관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하고 물었을 때 마조는 ‘서강의 물을 한입에 다 마셔버리면 그때 가르쳐주겠다.’고 대답하였던 것이다.

‘자네의 목숨을 내던진 곳’에 부처의 본뜻이 있고,‘서강의 물을 한입에 다 마셔버린 그곳’에 ‘일체의 존재와 무관한 진인(眞人)이 있다.’는 마조의 대답은 불법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려면 한마디로 ‘죽으라’는 대답이었던 것이다.

율곡은 그러나 죽지 않았다.

아니 죽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율곡의 마음속에는 유가의 실리(實理)가 가득 들어있었으므로 율곡은 비록 겉은 불자와 같은 행장을 차리고 있었으나 불법을 향해 목숨을 내던질 수가 없었으며, 서강의 물을 한입에 다 마셔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율곡은 금강산 입산과 동시에 예정되어 있었던 하산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똑똑한 세속의 선비였던 율곡을 만난 순간 그가 쓴 절구를 소매 자락에 집어넣은 후 자신만의 공간이 젊은 선비에게 노출되었음을 부끄럽게 여기고 오히려 더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어간 노승이 바로 부처의 현신임을 아마도 율곡은 평생 동안 알아차리지 못하였을 것이다.
2006-02-0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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