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424)-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49)

儒林(424)-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49)

입력 2005-09-02 00:00
수정 2005-09-02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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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49)

이 장면을 보면 맹자 자신도 ‘말을 좋아하는 호변가(好辯家)’로 불려지고 있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불편한 심기를 갖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맹자는 다만 ‘비뚤어진 사설을 없애고(息邪說)’, 또한 ‘방자한 말을 몰아내기 위해서(放淫辭)’ 어쩔 수 없이 논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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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양주·묵적의 사상과의 치열한 논쟁은 뒤에 상세히 다루어질 것이니와 부동심을 얻기 위해서는 ‘호연지기(養氣)’와 동시에 ‘말을 알아야 한다.(知言)’는 스승의 대답을 듣자 공손추는 마침내 맹자에게 그 까닭을 물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지언이라 합니까.”

이에 대해 맹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비뚤어진 말에서 그 가려진 바를 알며, 지나친 말에서 그 빠져 있는 바를 알며, 사악한 말에서 그 떨어져 있는 바를 알며, 회피하는 말에서 그 곤궁한 말을 아는 것이니, 그 마음에서 생겨나 정치에 해를 끼치며, 그 정치에서 비롯되어 그 일에 해를 끼친다.…”

맹자는 자신이 호변가(好辯家)가 아니라 지언가(知言家)임을 명백하게 선언하고 있다.

맹자는 말의 병폐를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나누고 있다.

즉, 비뚤어진 말의 ‘피사(辭)’와 지나친 말의 ‘음사(淫辭)’, 사악한 말의 ‘사사(邪辭)’, 회피하는 말의 ‘둔사(遁辭)’로 나누고 있는 것이다.

말이 비뚤어지게 나오는 것은 이기적인 욕심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이며, 말이 지나치게 격해지는 것은 자신의 세속적인 명예나 욕망이 손상을 입을 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말이 사악해지는 것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며, 말이 회피되는 것은 책임을 면하기 위한 것이나 진실을 속이려는 거짓말의 속임수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대부분 이 말의 해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가 ‘너희는 그저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말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던 것은 바로 대부분의 말이 마음속의 악에서부터 비롯되기 때문인 것이다.

맹자는 자신은 ‘말을 알고 있는 사람’이므로 이러한 말의 해독에서 벗어나 있음을 분명하게 선언한다.

그리고 나서 맹자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성인께서 다시 일어나더라도 반드시 내 말을 따를 것이다.(聖人復起 必從吾言矣)”

그리하여 BC312년, 맹자는 홀연히 제나라를 떠난다.

이때 맹자의 나이는 60세.

38세 무렵에 시작된 맹자의 주유천하는 이미 20년 이상 계속되었고, 노경에 접어들었으나 제나라를 떠나는 맹자의 뒷모습은 대장부다운 당당한 기상을 갖고 있었다.

한마디로 호연지기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맹자의 모습은 ‘머물러야 할 때는 오래 머물고, 빨리 떠나야 할 때는 빨리 떠나는 것은 공자이시다. 나는 그런 것을 행할 수 없지만 원하는 것은 공자를 배우는 것이다.’라는 자신의 말을 그대로 실행에 옮긴 단호하고 꿋꿋한 태도였던 것이다.
2005-09-0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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