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두란 원로시인은 원래 이곳 단양 출신이었다. 단양 출신이었으므로 누구보다 이곳의 단양팔경과 그 팔경에 얽힌 유래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 도입구에 나오는 ‘퇴계선생 기침소리’와 시 종장에 나오는 ‘미기 두향 옥가락아’는 서로 깊은 연관이 있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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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나는 팔짱을 낀 채 자연석에 새겨진 시를 다시 한 번 읽어 보면서 생각하였다. 이퇴계가 노래하였던 ‘푸른 물과 붉은 산’의 단양에서 맺었던 ‘진실된 인연’이란 퇴계와 미기 두향과의 인연을 말함이 아닐 것인가. 그러므로 단양의 군수로 있을 무렵 이퇴계가 ‘꽃과 달이 어울려 시름은 한이 없다.’라고 노래하였던 것은 함께 술을 마시며 꽃과 달을 보던 두향과의 애틋한 추억 때문이 아닐 것인가.
순간 내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항간에 떠도는 이퇴계에 대한 소문 때문에. 율곡(栗谷)은 여색에 매우 근엄하였지만 퇴계는 여색에 매우 호탕하여 ‘낮 퇴계와 밤 퇴계는 다르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퇴계는 이율곡과는 달리 남녀의 섹스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다.
율곡은 아내와 합방할 때도 의관을 정제하고 들어가 지극히 근엄하게 접했다고 했는데, 이 말을 전해들은 퇴계는 ‘만물이 제대로 생성(生成)하려면 비도 오고 바람도 불어야 하는 법인데, 율곡이 범방(犯房)시에 그렇게 준엄하다면 어찌 자식이 있겠느냐.’하고 한탄하였다고 ‘퇴계언행록’은 기록하고 있을 정도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퇴계는 남녀간의 교접이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인간본연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며, 만물이 생성되는 음양의 조화임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퇴계는 이율곡과는 달리 비록 근엄한 스승이며 학자이긴 하였지만 남녀간의 상애(相愛)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기록 때문에 이퇴계가 비교적 여색에 대해 호방하였다는 과장된 소문이 나돌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퇴계는 평생 동안 병약하였다. 단양군수를 거쳐 풍기군수에 재임하였다가 마침내 감사의 허락 없이 임지를 떠나면서 제3기인 말년기를 열었던 이퇴계는 이때 감사에게 올린 글에서 자신의 병환을 다음과 같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는 몸이 허약하고 파리한 데다가 심기의 병까지 겹쳐 기침이 몹시 나고, 가래가 끓으며, 허리와 갈비뼈가 당기고 아픈가 하면 트림이 나고, 신물이 오르며, 등에는 한기가 가슴에는 열기가 번갈아 발작하며, 때로는 눈이 아찔아찔하고 머리가 어지러워 넘어질 것만 같았으며 숱한 일을 그르치고, 또 어제 일을 오늘 잊고, 아침의 일을 저녁에 잊으며, 밤으로 걸핏하면 악몽에 시달리며, 기혈이 마르고, 정신이 흐리며, 헛땀이 줄줄이 흐르고, 눕기를 좋아하며, 곯아떨어지곤 하였습니다.”
‘풍기군수가 감사에게 올리는 벼슬을 사양하는 상소문’이라는 글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퇴계의 그 무렵의 건강상태는 심각하였던 것처럼 보이는데, 물론 그의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고향에 머물 때는 이렇게 심한 병증을 호소하지 않은 데 비하여 벼슬에 나오면 이렇게 상세하게 증상을 호소하는 것은 어쩌면 벼슬에서 물러나려는 칭병(稱病)의 측면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05-02-0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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