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장마가 끝나면 불볕 더위가 찾아오리라.한 낮의 무더위를 피해 한밤에 산에 오르는 재미는 색다르다.세상 모두가 잠든 사이 팔공산 갓바위(冠峰·해발 850m)를 찾았다.
갓바위 산자락은 잠을 잊은 야간 산행족들로 분주했다.이제 막 차에서 내려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총총걸음을 옮기는 등산객과 서둘러 하산하는 사람들이 서로 어둠속에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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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기도처 1번지로 꼽히는 갓바위에서 소원… 입시기도처 1번지로 꼽히는 갓바위에서 소원을 비는 한 불교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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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기도처 1번지로 꼽히는 갓바위에서 소원…
입시기도처 1번지로 꼽히는 갓바위에서 소원을 비는 한 불교신도.
자정이 넘었지만 팔공산은 아직 잠들지 않은 채 깨어있었다.아니 밀려드는 야간 산행족들로 잠을 청하지 못하고 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갓바위로 향하는 등산로에는 밤 안개가 스멀스멀 밀려 내려왔다.
‘졸졸졸…졸졸졸….’한낮의 소음이 모두 사라진 밤.등산로 입구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선명하게 귓전을 울렸다.
소리만 들어도 얼마나 맑은 물인지를 짐작케 할 만큼 한밤에 들려오는 계곡의 물 소리는 청아하고 단아하다.한동안 물 소리에 넋을 놓고 있다가 갓바위로 발길을 재촉했다.
등산로 주변을 환하게 밝힌 불,불빛이 끊어질 듯하면 또 다시 나타나는 불.자욱한 밤 안개 속으로 퍼져나가는 불그스레한 불빛은 은근하게 사람들을 흥분시킨다.
갓바위 가는 등산로 주변에는 군데군데 불이 켜져 있어 밤이지만 산을 오르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다.
갓바위 바로 아래에 있는 선본사가 야간 기도객들을 위해 사시사철 등산로에 불을 밝혀두고 있다.
등산로가 콘크리트 포장길이라는게 흠이라면 흠이다.하기야 요즘 차가 오르지 못하는 산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내키지는 않지만 산길을 내는 것은 용서해 줄수 있다만 호젓한 산길을 콘크리트로 포장하는 만행(?)만은 백번을 양보하더라도 도저히 용서가 안된다.
빛이 사라진 밤에는 시각 대신에 청각이 더 민감해지는 걸까.‘줄줄줄…줄줄줄….’보청기를 낀 듯 계곡의 물 소리는 전을 더욱 크게 파고 들고 어느새 안개비가 촉촉히 어깨에 내려앉았다.
불 밝힌 등산로를 따라 바쁠 것 없이 터벅터벅 가는둥 마는둥 30여분을 올라가자 이젠 제법 가파른 계단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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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위 갓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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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위
갓바위
갓바위 바로 아래 선본사까지 이어진 화물용 케이블카 출발지다.
여기서부터 갓바위까지는 계속 돌 계단길이다.힘이 부치는 등산객들은 이곳에서 한숨을 돌린 후 정상 공격(?)에 나선다.
“이제 거의 다 올라왔습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하산하는 등산객들이 한마디씩을 던진다.산에 오르다 지쳐 쉬고 있는 등산객에게 하산하는 사람들이 ‘정상까지 거의 다왔다.’고 던지는 말은 대부분 새빨간 거짓말이다.
하지만 얼마나 듣기 좋은,아름다운 거짓말인가.거짓말인줄 알면서도 숨이 가쁜 등산객들의 발길은 한결 가벼워지니 말이다.
갓바위까지 이어지는 돌 계단길은 다소 지루하다.한낮의 열기가 식은 밤이지만 경사진 계단길을 오르다 보면 등줄기로 땀이 줄줄 흘러 내린다.
20여분 부지런히 돌계단을 밟아가면 조계종단의 직영 사찰인 선본사에 다다른다.선본사 절마당에서 시원한 생수 한사발로 목을 축인 후 다시 돌 계단 300여개를 오르면 갓바위다.
갓바위에는 ‘정성스레 기도하면 한가지 소원만은 들어준다.’는 돌부처(冠峰石造如來坐像·보물 제431호)가 밤에도 여전히 산을 지키고 있다.
짙은 밤 안개속에 보일듯 말듯 은은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갓바위부처.
‘약사여래불…약사여래불’ 어둠속으로 퍼져가는 염불소리는 등산객들을 한순간 불자(佛子)로 만들어 버린다.
갓바위부처 눈아래 제법 넓은 공간에는 밤을 잊은 올빼미 기도객들의 백팔배가 한창이다.
기도객들의 모습은 자못 진지하다.백팔배를 끝낸 기도객은 서둘러 하산을 재촉하고 다시 한무리의 기도객들이 합장을 하며 갓바위로 올라선다. 다들 무슨 바람이 그리도 많은지….그러나 정작 안개속에 둘러싸인 갓바위 돌부처는 아무런 말이 없다.
누구 소원은 들어주고 누구 소원은 안 들어준단 말인가.한여름밤.산사의 짙은 향내음의 여운을 안고 안개비를 부슬부슬 맞으며 한가롭게 산을 내려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경산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볼거리 먹을거리
갓바위의 높이 4m 석불좌상은 머리에 마치 갓을 쓴 듯한 자연판석이 올려져 있어 갓바위부처라 불린다.자비로운 미소가 사라진 근엄한 표정에다 이마 한가운데에는 큼직한 백호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불자들에겐 입시기도처 1번지로 소문이 자자하다.
갓바위 입구인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에는 야간 기도객이나 등산객을 위해 24시간 영업을 하는 음식점이 수두룩하다.시골집(053-852-3112)솔메기식당(053-852-9344)에서 늦은 밤 촌두부와 파전,호박전을 먹는 것도 별미다.
●가는 길
야간에는 승용차를 이용해야 한다.대구 동구 백안삼거리를 지나 능성재(예비군 훈련장)를 거쳐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삼거리에서 갓바위쪽으로 좌회전하면 된다.부산역(매월 음력 초 1일부터 초 8일까지 오후 7시15분.011-883-8868)과 울산 태화로터리(매월 음력 7·14일,그믐날 오후 9시·018-571-7007)에서 갓바위행 야간 버스가 운행한다.
2004-07-08 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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