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형 칼럼] ‘연극촌’에서 본 지방화

[이경형 칼럼] ‘연극촌’에서 본 지방화

이경형 기자 기자
입력 2003-09-04 00:00
수정 2003-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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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때 이른 추석(?)성묘를 마치고 귀경길에 경남 밀양시 부북면의 ‘밀양연극촌’에 들러 두 편의 연극을 잇따라 관람했다.4년전 월산초등학교 폐교 건물을 개조하여 연극공동체의 보금자리를 마련한 이곳은 한국의 대표적인 연극 마을로 자리잡아 가고있다.

교실 2개를 튼 소극장에선 아동극 ‘토끼와 자라’가 공연됐다.관객은 창원에서 버스 두 대로 온 어린이와 학부모가 대부분이었고,나머지는 인근 주민이거나 일부러 찾아 온 사람들이었다.

공연에 앞서 관객들은 출연배우들의 선창과 몸짓에 따라 노래와 춤을 배우면서 장내는 흥겨움으로 가득했다.1시간여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은 축제가 파할 때처럼 자리 뜨기를 아쉬워했다.두 번째 공연은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교사 뒤쪽의 천막 극장에서 저녁 8시부터 시작된 ‘서툰 사람들’이었다.객석엔 연극캠프에 참여중인 어린이들과 일반 관객이 채 100석도 채우지 못했지만,연극이 끝난 후 출연자들에게 보내는 여러 차례의 뜨거운 박수는 대형 공연 못지않게 장내를 달구었다.

지난 7월17일부터 보름 동안 이곳에서 열렸던 제3회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기간엔 개막 첫날 야외 ‘숲의 극장’등 4개 극장의 좌석이 매진되는 등 피서를 겸한 전국의 관객들로 대성황을 이뤘다고 한다.연극촌 촌장이라고 할 수 있는 연출가 이윤택씨는 극단 연희단거리패를 이끌고 매주말 연극 공연으로 이곳을 일궈왔다.그는 “밀양시민들과 호흡을 함께하면서 자리를 잡아왔다.”면서 “인근 부산,울산은 물론 서울 관객도 심심찮게 온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밀양 하면 주변의 뛰어난 풍광과 함께 조선 후기 대표적 건축물인 영남루가 먼저 떠올랐지만 앞으로는 연극촌이 될 법하다.지난 90년대 이후 지방자치제 실시와 함께 ‘지방화’가 강조돼왔고,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도 지방 분권을 역설하고 있다.

중앙집권적 국가경영시스템을 분권형으로 전환하는 제도적 개혁은 지방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마찬가지로 지방 주민들이 그 지역의 특화된 문화적 요소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도록 중앙 정부나 해당 지자체가 적극 지원하는 일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지금 전국적으로 매년 1000여 건의 기초자치단체 단위 지역 축제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각 지방은 특산물,유적지,유·무형문화재,온천,기타 관광자원과 연관된 지역 축제를 개최하고,이 과정에서 지역문화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축제 숫자만큼 내실을 거둔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그래도 지방화의 소중한 촉진제가 되고 있다.

언젠가 독일 뮌헨 지방을 여행했을 때 우연히 어울렸던 맥주 축제, 일본 홋카이도 노보리벳쓰 지역에 갔을 때 ‘도깨비 결혼’ 마쓰리(축제)행렬에 끼어 놀았던 문화 체험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영국의 웨일스 지방의 헤이온와이는 1960년대 초만 해도 퇴락한 시골마을에 불과했다.그러나 리처드 부스라는 한 청년의 헌책 사랑으로 세계 최초의 ‘책 마을’로 자리잡은 뒤 지금은 세계고서전시회 개최 등으로 연간 50만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청계천 복원공사로 존폐 위기에 처한 청계천6가 일대의 헌책방들도 한국의 헤이온와이로 재탄생할 수는 없을까.고서점 호산방 박대헌 대표는 강원도영월의 한 폐교에 책박물관을 세우면서 책마을을 건설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파주 통일동산 인근에 건설되고 있는 예술문화인들의 창작,전시,거주 공간을 겸한 ‘헤이리 마을’도 헤이온와이의 아이디어를 벤치마킹했다.

진정한 지방화 시대는 권력 구조나 경제력의 분권 못지않게 그 지방의 문화적 차별화,독자성이 꽃을 피울 때 제대로 열리는 것이다.

본사 이사 khlee@
2003-09-0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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