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제청 파문 일파만파 /‘사법파동’ 조짐

대법관 제청 파문 일파만파 /‘사법파동’ 조짐

입력 2003-08-14 00:00
수정 2003-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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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출범 이후 첫 대법관 임명 제청을 둘러싼 파문이 확산되면서 ‘사법파동’에 대한 우려가 일고 있다.

강금실 법무장관과 박재승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법관제청위원직을 사퇴한데 이어 한 부장판사가 13일 인선에 거부감을 표시,사직했다.또 소장판사 3명이 대법관 인선과정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며 의견서를 작성,판사 100여명에게서 동참서명을 받았다.

법원은 이날 서둘러 대책회의를 열고 진화에 나섰지만 판사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에 당황해 하고 있다.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시민단체들도 성명서를 잇따라 내놓으며 대법원을 압박했다.

●법관 사퇴,이메일 연판장 파문

‘개혁법관’으로 알려진 박시환 서울지법 부장판사는 “기존의 방식에서 한걸음도 변하지 않는 사법부에 좌절감을 느낀다.”면서 서울지방법원장에게 사퇴서를 제출했다.문흥수 부장판사도 “기득권 세력이 사법개혁을 방해하도록 좌시하지 않겠다.”며 강력히 항의했다.

중견 및 소장 법관들은 대법원장의 신임 대법관 제청을 앞두고 대법원장의 재고를 촉구하는 이메일 연판장을 돌리고 있다.서울지법 북부지원 이용구 판사는 이날 “대법관 제청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재경지역 단독판사들이 전국 법관에게 대법원장의 재고를 건의하기 위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밝혔다.27회 이상 부장판사들까지 이메일로 동참을 요청했다며 의견을 수렴한 뒤 연명서 형태로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이 판사는 이날 법원 내부 통신망에 올린 ‘대법원장의 재고를 촉구하며’라는 글을 통해 “대법원의 인적구성이 현재의 규범적인 이해관계를 반영하지 못한 채 과거만을 반영한다면 대법원은 보수적인 것이 아니라 퇴행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경한 대법원

그러나 대법원은 입장이 확고하다.대법원은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강 장관 등이 자문위 회의에서 중도 퇴장한 것에 법조계 대표로서 책임감을 망각한 적절치 못한 행동이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또 대법관 제청 후보 등 비공개 회의 내용이 언론에 공개된 것에 대해 “자문위 존립자체를 위협한 행동”이라고 말했다.이강국 법원행정처장은 “법원이 아무리 자유롭게 의견을 진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어도 법관은 법원이라는 조직에 몸담은 국가 공무원이기 때문에 집단 행동은 부적절하다.”고 강조했다.

●엇갈리는 법원 내부의견

일선 판사들의 의견은 분분하다.대부분 밤늦도록 법원에 남아 삼삼오오 의견을 나눴다.“대법원장이 시민단체 등 외압에 흔들림 없이 사법부의 고유권한을 유지했다.”고 환영하는 법관도 있었다.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심리를 원활하게 진행하려면 경험이 많은 인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30,40대 법관들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고집”이라고 입을 모았다.한 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이 후보 중에 한명이라도 시민단체 등이 언급한 인사를 포함시켰더라도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대법원이 외부의 요구가 어느 정도인지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박시환 부장판사,문흥수 부장판사 등은 내부통신망을 통해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거듭 역설했다.이번 사건을 보도한 신문기사도 빠짐없이 게재,외부시선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서울지법 한 판사는 “이르면 14일 사법부 개혁을 촉구하는 건의문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현행 대법관 임명절차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후보자를 대통령에게 추천하고 대통령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하는 절차에 따라 선임된다.복수추천이 아니고 서열과 기수에 따른 단수 추천이다 보니 사실상 대법원장의 추천이 임명 그 자체였다.때문에 진보적 성향이나 재야인사들이 대법관으로 진출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특히 법관들이 대법원장의 눈치를 보거나 예속될 수 있다는 지적마저 제기됐다.다만 지금도 13명의 대법관 가운데 2명은 검찰 출신과 변호사 출신을 관례적으로 임명하고 있다.하지만 나머지 11명은 전적으로 대법원장의 추천을 받은 현역 법원장급 가운데 임명돼왔다.

강충식 정은주기자 chungsik@
2003-08-14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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