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확인했습니다.속을 태운 세월이 서러워 보상해 달라고 오열했지만 정부는 기다리라고만 합니다.”
1962년 실종된 북파공작원 김종섭(당시 39세)씨의 큰딸 영자(47·인천 남구 주안4동)씨는 9일 새벽 잠을 이루지 못하고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언젠가 돌아오시겠지.”라며 기다린 것이 41년째.그러나 지난달 24일에야 비로소 아버지의 사망사실을 공식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설마 기록이 남아 있겠느냐.’며 정부측에 확인조차 하지 않았던 큰딸은 ‘혹시나’하는 마음에 지난달 경기 성남시 청계산 자락의 ‘북파공작원 충혼탑’을 찾았다.2001년 세워진 탑 지하창고에는 7723명의 전사자 명단이 보관돼 있었다.큰딸은 선명하게 적힌 아버지의 이름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실신하고 말았다.
그는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북파공작원 전사자 명단에 들어있는 것을 보고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면서 “버젓이 자료가 있는데도 그동안 가족에게 생사조차 알려주지 않은 정부가 원망스럽다.”고 통곡했다.
어머니 지금애(72)씨는 남편의 사망 사실을 전해 듣고 고개를 떨궜다.실낱 같은 기대감에 제사도 지내지 않은 지씨는 “그해 여름 남편은 보름만 기다리면 집에 온다는 말만 남기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면서 “기다리다 지쳐 네살짜리 막내를 들쳐업고 집 근처 군부대를 찾았다가 욕설을 듣고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다.”고 몸서리쳤다.
남편의 ‘실종’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끼니 걱정 때문에 인하대에 취직한 지씨는 평생을 청소부로 일하며 1남2녀를 키워냈다.지씨는 “뒤늦게 남편의 죽음을 확인하고 관련 자료를 정부에 제출했다.”면서 “하루 빨리 보상이라도 받아야 죽은 남편의 원한이 풀릴 것”이라고 울먹였다.
하지만 정부는 68년 이후 파견된 공작원부터 보상한다는 방침이어서 지씨와 자녀들은 다시 한번 고통을 받고 있다.큰딸은 “충효를 근본으로 삼는 나라가 조국을 위해 몸을 바친 사람을 외면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지난 97년 음주운전 승용차에 치여 오른손과 발이 마비된 아들(50)을 돌보기 위해 하루 8시간씩 청소부로 일하고 월급 48만원을 받는 지씨는 남편과 찍은 흑백 사진을 쓸어내리며 눈물을 쏟아냈다.
박지연기자 anne02@
1962년 실종된 북파공작원 김종섭(당시 39세)씨의 큰딸 영자(47·인천 남구 주안4동)씨는 9일 새벽 잠을 이루지 못하고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언젠가 돌아오시겠지.”라며 기다린 것이 41년째.그러나 지난달 24일에야 비로소 아버지의 사망사실을 공식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설마 기록이 남아 있겠느냐.’며 정부측에 확인조차 하지 않았던 큰딸은 ‘혹시나’하는 마음에 지난달 경기 성남시 청계산 자락의 ‘북파공작원 충혼탑’을 찾았다.2001년 세워진 탑 지하창고에는 7723명의 전사자 명단이 보관돼 있었다.큰딸은 선명하게 적힌 아버지의 이름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실신하고 말았다.
그는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북파공작원 전사자 명단에 들어있는 것을 보고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면서 “버젓이 자료가 있는데도 그동안 가족에게 생사조차 알려주지 않은 정부가 원망스럽다.”고 통곡했다.
어머니 지금애(72)씨는 남편의 사망 사실을 전해 듣고 고개를 떨궜다.실낱 같은 기대감에 제사도 지내지 않은 지씨는 “그해 여름 남편은 보름만 기다리면 집에 온다는 말만 남기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면서 “기다리다 지쳐 네살짜리 막내를 들쳐업고 집 근처 군부대를 찾았다가 욕설을 듣고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다.”고 몸서리쳤다.
남편의 ‘실종’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끼니 걱정 때문에 인하대에 취직한 지씨는 평생을 청소부로 일하며 1남2녀를 키워냈다.지씨는 “뒤늦게 남편의 죽음을 확인하고 관련 자료를 정부에 제출했다.”면서 “하루 빨리 보상이라도 받아야 죽은 남편의 원한이 풀릴 것”이라고 울먹였다.
하지만 정부는 68년 이후 파견된 공작원부터 보상한다는 방침이어서 지씨와 자녀들은 다시 한번 고통을 받고 있다.큰딸은 “충효를 근본으로 삼는 나라가 조국을 위해 몸을 바친 사람을 외면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지난 97년 음주운전 승용차에 치여 오른손과 발이 마비된 아들(50)을 돌보기 위해 하루 8시간씩 청소부로 일하고 월급 48만원을 받는 지씨는 남편과 찍은 흑백 사진을 쓸어내리며 눈물을 쏟아냈다.
박지연기자 anne02@
2003-05-10 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