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성 감독 데뷔작 나비 / 80년대 삼청교육대 배경 권력에 짓밟힌 ‘비련 남녀’

김현성 감독 데뷔작 나비 / 80년대 삼청교육대 배경 권력에 짓밟힌 ‘비련 남녀’

입력 2003-04-25 00:00
수정 2003-04-25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30일 개봉하는 김현성 감독의 데뷔작 ‘나비’(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는 ‘웃기는 여배우’ 김정은이 순애보에 멍드는 비련의 여주인공으로,주·조연 합해 22편의 영화를 찍었으나 흥행복을 타지 못한 김민종이 비운의 건달로 나오는 액션멜로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잡은 영화는 태생적으로 복고풍일 수밖에 없다.시골청년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1년 뒤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며 무작정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싣는 도입부는,중년관객까지도 놓치지 않겠다는 ‘계산’을 보여준다.

영화는 한참동안 김정은의 주특기인 코믹연기에 기댄 코미디로 진행된다.별 볼 일 없는 건달 민재(김민종)를 죽기살기로 쫓아다니는 시골처녀 혜미(김정은)의 순박한 대사,서울로 간 민재가 깡패로,룸살롱 제비로 갈팡질팡하는 행색에 폭소가 잇따라 터진다.

복고풍의 익숙한 외피를 갖췄으나 영화는 곧 ‘위험한’ 시도에 들어간다.순식간에 권력의 횡포와 활극이 난무하는 비극멜로로 화면이 바뀐다.옛사랑을 찾아 상경했다가 군 고위간부 허대령(독고영재)의 애첩으로 전락한 혜미는 곡절 끝에 민재를 만나지만,이를 눈치챈 대령은 민재를 삼청교육대로 보내버린다.

미국에서 촬영공부를 한 감독은 ‘흑수선’‘가문의 영광'의 비주얼 디렉터 출신.화면기법은 누아르 뺨치게 세련됐다.그럼에도 “밑바닥 인생의 숭고한 사랑을 담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는 근사한 화면 위에서 빙빙 겉돈다.억울하게 인권이 짓밟히는 삼청교육대를 주무대로 잡았으나,시대 활극이 아닌 이상 허점이 많다.

허대령의 심복인 출세지향형의 인물 황대위(이종원)까지 혜미를 좋아하면서 남녀 주인공을 둘러싼 극은 4각 구도의 멜로가 된다.80년대의 왜곡된 권력횡포를 덤으로 고발하려는 시도까진 좋은데,인과 얼개가 치밀하지 못하다.‘람보’류의 대규모 총기 액션을 구사하며 혜미와 민재를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황대령의 처절한 분노는 후반부의 주요설정.그의 갑작스런 광기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스크린 밖에서는 의아할 뿐이다.삼엄한 경계를 뚫고 혜미가 삼청교육대의 철조망 앞에 나타나는 상황도 뜨악해진다.시대와 소재에서 과감히 복고를 선택한 영화의 용기가 감정만 출렁이는 신파로 주저앉는 듯해 아쉽다.

복고지향이지만 유행을 의식한 흔적도 역력하다.걸쭉한 사투리에 질펀한 입담을 자랑하는 주변 캐릭터들이 잔재미를 돋구는 데 성공했다.

황수정기자 sjh@
2003-04-25 2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유튜브 구독료 얼마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나요?
구글이 유튜브 동영상만 광고 없이 볼 수 있는 ‘프리미엄 라이트'요금제를 이르면 연내 한국에 출시한다. 기존 동영상과 뮤직을 결합한 프리미엄 상품은 1만 4900원이었지만 동영상 단독 라이트 상품은 8500원(안드로이드 기준)과 1만 900원(iOS 기준)에 출시하기로 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적절한 유튜브 구독료는 어느 정도인가요?
1. 5000원 이하
2. 5000원 - 1만원
3. 1만원 - 2만원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