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한 곳에 던져져 불안과 공포 속에서 혼자 오돌오돌 떨고 있는 존재,그것이 내겐 남들이 애쓴 작품들이다.” 문학평론가 김윤식(67·서울대 명예교수)씨를 거치지 않고 한국 문학을 논한다는 것은 노른자 없는 달걀을 얘기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그만큼 한국문학에 끼친 ‘김윤식의 힘’은 우람하고도 오지랖 넓은 것이었다. 한국문학에 대한 그의 치열한 응시와 사유를, 새로 펴낸 그의 문학비평집 ‘아! 우리 소설 우리 작가들’(현대문학 펴냄)을 통해 새삼스럽게 다시 확인하게 된다.
문학비평가는 물론 문학사가,문학이론가로서 그가 우리 문단에 남긴 족적이 이만큼 깊고 큼지막한 것은 지난 40여년동안 우리 문단의 생명이 맥동하는 가슴팍에서 한 순간도 진단의 시선을 거두지 않은 데서 비롯되는 힘이다.소설가 박완서씨는 이런 그의 열정을 대동여지도를 낳은 김정호에 견주었다.
그는 최근에 펴낸 산문집 ‘두부’에서 “김정호가 순전히 발로 뛰고 눈으로 더듬어 최초의 우리나라 지도를 만들었듯이 그도 발로 뛰고 눈으로 더듬어 그와 동시대의 우리 문학의 지도를 만들었다.”며 “그는 작가가 공들여 쓴 글이 쓰레기가 될까봐 그걸 참을 수가 없어서 그토록 열심히 많이 읽는 게 아닐까.가치있는 게 쓰레기가 될까봐 눈에 불을 켜고 길목을 밝히는 거,그게 바로 문학에 대한 지독한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고 김씨를 평하고 있다.
이런 평가에 어울리게 김씨는 책에서 최근 2년여 동안 발표된 중견 및 신진들의 작품 70여편을 치밀하게 분석해 놓았다.최인훈 박상륭 서정인 박완서 최일남 김원일 신경숙 고은 등 이른바 문학으로 일가를 이룬 ‘8대가’를 앞세웠다.이들의 문학적 성취를 통해 지금 한국문단의 지형도를 그려 보이겠다는 의도다.
예컨대,그는 “근대 이후 우리 소설이 처한 ‘선험적 고향 상실의 잡스러움’”을 거론하며 “박상륭은 종교의 고귀성으로,서정인은 동양의 고전과 희랍신화를 통해,최인훈은 철학과 희곡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고 진단하고 있다.‘쌍자(雙字)모티프’로 신경숙의 작품을 읽고,‘작약꽃 간 지키기’라는 방식으로 고은의 시를 분석해 내는대목에서는 ‘성실’이 대가의 다른 이름임을 실감하게 된다.
이런 그의 태도는 문단의 신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남들이 공들여 쓴 글이란 내게도 글 쓴 작가에 있어서도 실존적인 인간에 다름아니다.”는 그는 “글쓰기에 생애를 걸라.그렇지 않으면 아예 때려 치우라.”고 회초리를 쳐든다.문학과 문학인에 대한 사랑과 몸소 후진들을 이끄는 솔선수범이 없다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대가의 꾸짖음’이다.
그러나 이런 점 때문에 그를 오만하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40여년을 평단에 몸담은 동안 100권이 넘는 저서를 펴내온 그에게 이만큼 뜻깊은 축복이 있을까.이는 대가든 중견 혹은 신인의 것이든 작품을 대하는 그의 진지함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하는 일은 남들이 쓴 글을 읽는 것이다.공들인 글이라 믿기에 공들여 읽고자 애쓴다.글쓴이들 쪽에서 보면 아주 유치하고 조잡스럽게 보이기도 하고 자주는 무성의하거나 폭력으로 보일 수도 있을 터인데,그런 일들은 근본적으로는 내 재능의 부족이거나 자질의 모자람에서 왔을 터이라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다시 박완서씨의 말을 듣자.“그는 한국문단에 이름을 올린 문인은 다 한번씩 출석을 불러 눈빛을 맞추고 얼굴을 익혀온 특별한 평론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물론 작품으로 말이다.그리하여 그가 출석을 안 불러주면 나 문인 맞나? 의심하는 작가도 있을지 모르고,혹은 이름을 불러 야단을 칠까봐 조마조마 안 불러 주기를 바라는 작가도 없으란 법은 없다.”
심재억기자 jeshim@
문학비평가는 물론 문학사가,문학이론가로서 그가 우리 문단에 남긴 족적이 이만큼 깊고 큼지막한 것은 지난 40여년동안 우리 문단의 생명이 맥동하는 가슴팍에서 한 순간도 진단의 시선을 거두지 않은 데서 비롯되는 힘이다.소설가 박완서씨는 이런 그의 열정을 대동여지도를 낳은 김정호에 견주었다.
그는 최근에 펴낸 산문집 ‘두부’에서 “김정호가 순전히 발로 뛰고 눈으로 더듬어 최초의 우리나라 지도를 만들었듯이 그도 발로 뛰고 눈으로 더듬어 그와 동시대의 우리 문학의 지도를 만들었다.”며 “그는 작가가 공들여 쓴 글이 쓰레기가 될까봐 그걸 참을 수가 없어서 그토록 열심히 많이 읽는 게 아닐까.가치있는 게 쓰레기가 될까봐 눈에 불을 켜고 길목을 밝히는 거,그게 바로 문학에 대한 지독한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고 김씨를 평하고 있다.
이런 평가에 어울리게 김씨는 책에서 최근 2년여 동안 발표된 중견 및 신진들의 작품 70여편을 치밀하게 분석해 놓았다.최인훈 박상륭 서정인 박완서 최일남 김원일 신경숙 고은 등 이른바 문학으로 일가를 이룬 ‘8대가’를 앞세웠다.이들의 문학적 성취를 통해 지금 한국문단의 지형도를 그려 보이겠다는 의도다.
예컨대,그는 “근대 이후 우리 소설이 처한 ‘선험적 고향 상실의 잡스러움’”을 거론하며 “박상륭은 종교의 고귀성으로,서정인은 동양의 고전과 희랍신화를 통해,최인훈은 철학과 희곡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고 진단하고 있다.‘쌍자(雙字)모티프’로 신경숙의 작품을 읽고,‘작약꽃 간 지키기’라는 방식으로 고은의 시를 분석해 내는대목에서는 ‘성실’이 대가의 다른 이름임을 실감하게 된다.
이런 그의 태도는 문단의 신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남들이 공들여 쓴 글이란 내게도 글 쓴 작가에 있어서도 실존적인 인간에 다름아니다.”는 그는 “글쓰기에 생애를 걸라.그렇지 않으면 아예 때려 치우라.”고 회초리를 쳐든다.문학과 문학인에 대한 사랑과 몸소 후진들을 이끄는 솔선수범이 없다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대가의 꾸짖음’이다.
그러나 이런 점 때문에 그를 오만하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40여년을 평단에 몸담은 동안 100권이 넘는 저서를 펴내온 그에게 이만큼 뜻깊은 축복이 있을까.이는 대가든 중견 혹은 신인의 것이든 작품을 대하는 그의 진지함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하는 일은 남들이 쓴 글을 읽는 것이다.공들인 글이라 믿기에 공들여 읽고자 애쓴다.글쓴이들 쪽에서 보면 아주 유치하고 조잡스럽게 보이기도 하고 자주는 무성의하거나 폭력으로 보일 수도 있을 터인데,그런 일들은 근본적으로는 내 재능의 부족이거나 자질의 모자람에서 왔을 터이라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다시 박완서씨의 말을 듣자.“그는 한국문단에 이름을 올린 문인은 다 한번씩 출석을 불러 눈빛을 맞추고 얼굴을 익혀온 특별한 평론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물론 작품으로 말이다.그리하여 그가 출석을 안 불러주면 나 문인 맞나? 의심하는 작가도 있을지 모르고,혹은 이름을 불러 야단을 칠까봐 조마조마 안 불러 주기를 바라는 작가도 없으란 법은 없다.”
심재억기자 jeshim@
2003-02-21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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