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형 칼럼]비극의 저변

[이경형 칼럼]비극의 저변

이경형 기자 기자
입력 2003-02-20 00:00
수정 2003-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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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의 용의자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56세의 신체장애인이다.이번 대참사를 일으킨 장본인이 누구든 용납할 수 없는 범죄자임에는 틀림 없다.

그럼에도 이 비극의 저변을 한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용의자는 6년 동안 택시 운전을 해오다 2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실어증과 함께 오른쪽 마비 증세가 왔다.작년 8월에는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오른쪽 상·하반신이 말을 듣지 않아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뇌졸중 치료를 했으나 잘 낫지 않자 의사의 잘못이라며 병원에 불을 지르겠다느니,죽고 싶다느니 하며 가족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해왔다고 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개인의 정신질환이나 욕구 불만이 불특정 다수나 사회에 대한 증오·저주형 범죄로 폭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지난 11일 부산에서는 달리는 차량을 표적으로 삼아 총을 쏘아댄 ‘묻지마 총격’사건이 발생했다.1991년에는 여의도 광장 ‘살인 질주’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물론 외국에서도 비슷한 사건들이 이따금 일어난다.1995년 일본 도쿄에서는 지하철 독가스 테러 사건이 있었다.신흥 종교 집단의 망상에 의한 범죄였다.지난해 10월 미국 워싱턴 DC 부근에서는 불특정 차량에 대한 조준 사격이 무려 22일 동안이나 계속돼 10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발생했다.범인은 가정이 파탄난 중년 남자와 불법체류로 추방 직전에 있던 외국인 소년이었다.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범죄의 원인을 두고,사회적 책임론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그 같은 사고는 자칫 일탈과 비행에 대한 사회 통제체계를 붕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개별 행위자의 책임만으로 치부하는 것 역시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비행이나 범죄의 원인 가운데는 사회공동체가 함께 나눠 가져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는 데도 이를 외면하게 되는 까닭이다.사회 규범에 반하는 특정 행위자를 교도소나 정신병원으로 보내 사회로부터 격리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결코 그렇지 않다.그렇게 하면 십중팔구 제2,제3의 일탈자·범죄자가 속출하기 마련이다.

개인들이 좌절이나 울분을 사회제도의틀 안에서 해소하지 못할 경우 흔히 자살이나,마약,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된다.이런 개인들 가운데 일부는 사회를 향해 분노를 쏟아낸다.그것이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총격,무차별 테러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번 용의자도 직업 상실,우울증,지체장애 등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오면서 치솟는 분노를 방화를 통해 표출시킨 것이다.만약 그에게 총이 있었다면 총을 난사했을 수도 있고,자동차가 있었다면 인파 속으로 차를 질주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의 주변을 보면 부인은 식품 공장에 다니고 아들은 회사원,딸은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그는 2년전 만 해도 평범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지극히 정상적인 가장이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 우리 사회를 한번 되돌아보게 된다.실직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은 확충되고 있는가.병 든 사람을 치료하는 의료보호 체계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돌보는 보호시설은 실질적으로 운영되고 있는가.많은 물음들이 꼬리를 문다.

가진자,권력자,지식인들이과연 극빈자,노약자,장애인,가정결손 아동,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소외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를 묻게 된다.

대구 지하철 대참사를 계기로 ‘더불어 사는 공동체’ 정신의 현주소를 되짚어 본다.

논설위원실장 khlee@
2003-02-2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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