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공간]에코캠퍼스운동을 지지하며

[녹색공간]에코캠퍼스운동을 지지하며

박병상 기자 기자
입력 2003-02-17 00:00
수정 2003-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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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중반,지방대학의 신설학과에 입학한 나는 “학교의 발전이 자신의 발전”이라는 교수의 언설을 교시로 여긴 적이 있다.타 학과 강의실을 빌려 쓰는 셋방살이 신세를 면할 날을 학수고대하며 신축건물이 여기저기 오를 때마다 교수와 학생들은 뿌듯해 하곤 했다.

고즈넉한 동숭동에서 관악산 기슭으로 옮긴 서울대학교가 황량하다 싶었던 시절,처음 방문한 사람도 약속된 건물을 쉽게 찾곤 했는데,90년대를 지나면서 전자제품의 회로기판처럼 캠퍼스는 복잡해졌다.건물번호를 앞세워 물어도 정확한 안내는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다.건물이 빼곡한 교정에 농과대학이 합세하면서 관악산의 한 귀퉁이가 잘려나갈 위기에 처하자 지역주민들이 문제삼았지만,학문 발전을 앞세우는 학자들의 고집 앞에 관악산마저 비좁아지고 말았다.

‘내 집 마련’은 서민들만의 꿈이 아니던가.진리를 탐구하던 대학이 벤처기업 양성소로 화려하게 변신한 요즘,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장악된 서울의 한 대학에서 열린 색다른 집회가 뭇 사람의 시선을 잡는다.그루터기에 앉아 하이데거를 읽다 홍여새와 울새의 울음소리에 잠시 귀기울이던 숲은 첨단 건물 등쌀로 초승달처럼 처량하고,시도 때도 없는 경적과 전화벨은 진리 탐구나 명상 따위를 원천 봉쇄하는데,일단의 교수들이 시대착오적인 논쟁으로 세월을 보낸다는 것이다.

전통이 서린 건물을 보전하자는 대책위 교수와 39년 된 낡은 교사를 헐어 내 집을 근사하게 장만하려는 신과대학 교수들이 한겨울을 달구는 현장을 가보자.철거를 막으려 텐트 치고 농성하던 교수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새벽녘,느닷없이 들이닥친 철거반에 의해 반쯤 헐린 연신원의 을씨년스러운 앞뜰이 그곳이다.연신원 복원과 함께 환경과 전통을 중시하는 ‘에코캠퍼스운동’을 다짐하며 철야농성을 불사하는 대책위 교수들 옆에 “조속한 신축”을 주장하는 신과대학 교수들이 나란히 텐트를 쳤다고 하는데,비단 연신원 앞뜰만이 뜨거운 건 아니다.학생들이 동참하는 인터넷 공간도 후끈거린다.

수년의 정성어린 모금으로 셋방살이를 면하려는 순간 부딪힌 반대 목소리는 내 집 마련의 단꿈에 젖은 교수들을 꽤 당황케 한 모양이다.야심한 시각을 틈타 헐어낸 것을 보면.“개발과 확장 일변도의 물신주의”라는 대책위 교수들의 비평에 마음 상한 신과대학 교수들은 자기들이 쓰던 건물을 헐고 새 건물을 올릴 때 잠자코 있었던 대책위 교수들의 태도에 발끈한다.대안으로 제시되는 공간을 한사코 거부하며 연신원을 부순 자리에 신축할 것을 재차 강조한다.

급여와 권력의 크기에 따라 대학과 학문이 서열화된 우리 풍토에서 대학은 이미 다양성을 잃었다.고시 열풍이 진리 탐구를 전복한 교정에서 유행에 압도돼 개성을 잃은 학생들은 남이 정한 획일적 기준을 좇는 줄서기로 마음 바쁘다.특정 연예인의 장신구와 고급 상표에 몰려다니고,취업에 앞서 성형수술이 성행하는 최근의 양태는 누가 선도했을까.선거철마다 줄대기에 바쁜 교수들의 행실과 무관할까.자본이 제공하는 연구비의 액수에 소신마저 내던지는 교수는 책임이 없을까.

시각에 따라 낡은 것도 되는 전통은 역사와 문화가 빚은 다양성의 산물이다.전통 없는 다양성은 독창적 가치가 없고,독창성이 없는 대학에전통은 기대하기 어렵다.연신원의 향배는 당사자들의 합의로 판단할 사항이므로 타자로서 왈가왈부할 처지가 못된다.하지만 다양성과 전통은 보전하라고 당부하고 싶다.연신원 철거를 계기로 비롯된 에코캠퍼스운동을 지지한다는 뜻이다.

박 병 상
2003-02-17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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