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가 쓴 불상 안내판

소설가가 쓴 불상 안내판

입력 2002-12-30 00:00
수정 2002-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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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手印)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오른손은 손바닥을 펴서 자연스럽게 무릎 안쪽에 올려놓고 있으며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구부려 오른쪽발바닥 위에 놓았다.앉은 자세는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위에 걸친 이른바 항마좌(坐)를 취하고 있다.”

전남 화순 쌍봉사 대웅전 앞에는 이런 내용을 담은 문화재 안내판이 서 있다.대웅전 안에 모신 목조삼존불상을 설명하는 글이다.쌍봉사를 찾은 순례객들은 안내판이 너무나도 쉽게 읽히는 데 신기해한다.

물론 여기도 ‘수인’이나 ‘항마좌’ 같은 전문용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안내판을 읽어가면서 의문은 풀리게 마련이다.

어려운 용어를 쉽게 풀어놓았기 때문이다.목조삼

존불상뿐이 아니다.극락전에 모신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안내문도 그렇다.

“코는 반원통형에 가깝고 콧볼은 상단만 약간 파서 표현하였다.귀는 크고 두툼하며 귓불이 뭉퉁하다.…허리는 짧고 통통하다.어깨가 무릎에 비해 너무 넓어 둔중한 감을 준다.”

‘뭉퉁’하고,‘통통’하며,‘둔중’하다고 표현한 대목에서는 아미타부처님께 혹 누가 되지나 않을까 읽는 사람이 다 걱정이 될 지경이다.너무 쉬워서 오히려 예사롭지 않은 이 안내문은 소설가 정찬주씨가 쓴 것.정씨는 성철 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산은 산 물은 물’을 비롯,‘암자에는 물 흐르고 꽃이 피네’‘돈황 가는 길’ 등을 발표한 작가.불교를 문학적 뿌리로 삼는그는 지금 쌍봉사 가까운 곳에 ‘이불재’(耳佛齋)라는 작업실을 마련하여 생활하고 있다.

정씨는 그동안 어느 절에 가든 친절하지 못한 안내문에 속상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그런데 최근 화순군청이 전남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목조삼존불상과 목조아미타여래좌상,목조지장보살상 일괄 등 쌍봉사 불상 3건의 안내판을 새로 만들며 문안을 부탁한 것.정씨는 즉석에서 수락했다고 한다.

정씨는 “그동안 절의 안내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책임질 일도 아닌데 미안하고 겸연쩍었다.”면서 “요즘은 외지인들이 안내문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면 마음이 밝아진다.”고 말했다.

서동철기자
2002-12-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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